[시론/이상돈]실패한 철도파업의 교훈

  • 입력 2006년 3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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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파업은 수습 단계에 들어갔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정부가 공공분야의 불법 파업에 대해 어떤 대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향후 노사관계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강성 노조가 주도하는 파업은 이제 철도나 지하철 같은 공공분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사기업에선 파업이 빈발하면 기업 자체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노조도 잘 알고 있다. 반면 공공분야는 경쟁을 하지 않으며, 사용자가 함부로 직장을 폐쇄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직장이 문 닫을 염려가 없으니 공공노조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열심이고, 주인의식이 희박한 사(使)측은 노조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사측과 노조가 합심해서 직장을 살렸다”는 미담을 공공분야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도 등 레일 운송수단은 나름대로 장점도 있지만 막대한 투자비와 운영비, 그리고 경직적 인건비 등으로 인해 채산을 맞추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철도와 지하철 파업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철도’라고 하면 ‘적자’와 ‘파업’이 연상되겠는가.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향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멕시코가 철도 대신 장거리 버스를 육상 운송의 기간(基幹)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구조적으로 파업에 취약한 철도와 지하철에 강성 노조가 들어섰으니 파업이 연례행사가 된 것은 정해진 이치다. 게다가 정부는 ‘사회적 합의’니 ‘노사 상생(相生)’이니 하는 애매한 개념을 내세워 노조 주장을 다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들고 나왔고, 그러면 협상이 결렬되어 파업이 재발하는 악순환을 거듭해 온 것이다. 특히 불법 파업으로 해고된 사람들이 노조 간부들에게 영향을 주어 또다시 파업을 벌이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니, 온 국민이 공공노조의 ‘인질’이 된 형국이다.

이번 파업은 한 도시의 지하철 파업과 달리 전국을 상대로 한 대규모 파업이었지만 청와대는 침묵을 지켰고 이해찬 국무총리는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과 어울려 한가하게 골프를 쳤다. 노조를 편드는 듯한 언동을 해 온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뒤늦게 강경한 대책을 내놓자 노조원들이 파업을 풀기 시작했지만, 사태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다음이었다. 파업이 종식될 기미가 보이자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니 정말 한심한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1981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공항 관제사 파업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해 8월 미국의 공항 관제사 노조가 임금 인상 등을 내걸고 파업을 강행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48시간 내 복귀명령을 내렸다. 이틀 후 레이건 대통령은 파업에 참여한 1만3000명의 관제사 중 복귀명령을 따른 1650명을 제외한 전원을 파면했다. 노조 지도부는 투옥됐고, 파면된 관제사들은 다시는 그 일을 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강성 노동운동을 잠재울 수 있었고 방만했던 공공분야에 대한 구조조정도 본격화했다.

우리는 이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고속철마저 멈추어 버린 이번 파업을 비상사태 차원에서 접근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총리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골프나 쳤으니, 노조가 믿는 구석이 있어 강성 투쟁을 벌이는구나 하고 국민이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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