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노숙인에 일자리 한달’<상>재기를 꿈꾸는 사람들

  • 입력 2006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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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난달 6일 강변북로 성수대교∼청담대교 도로확장공사 현장에서 한 노숙인 근로자가 사다리 위에 올라서서 거푸집과 지지대를 철사로 엮고 있다. 강병기  기자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난달 6일 강변북로 성수대교∼청담대교 도로확장공사 현장에서 한 노숙인 근로자가 사다리 위에 올라서서 거푸집과 지지대를 철사로 엮고 있다. 강병기 기자
《노숙인 사회 복귀를 위한 서울시의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가 6일로 한 달째를 맞는다.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하는 이들도 속출했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를 희망으로 키워가려는 노숙인도 적지 않다. 2차례 기획 기사로 노숙인 일자리 갖기 현장을 살펴본다.》

4일 오후 찾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마포종합행정타운 건립 공사장에는 청사와 청소년수련원, 노인전문요양센터 등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안으로 들어서자 콘크리트파일을 땅 밑에 박는 둔탁한 소리와 요란한 기계음이 번갈아 울려 퍼졌다.

한 달 전 이곳에 왔다는 김규진(가명·42) 씨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김 씨가 옆으로 누워 있는 콘크리트파일에 철제 와이어를 묶어 놓으면 커다란 기계가 번쩍 들어 올려 연방 파일을 때려 댔다.

2000년부터 영등포 일대에서 노숙생활을 해 온 김 씨는 최근 한 달 사이에 큰 변화를 겪었다. 새벽에 일어나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면 자신만의 방 안에서 TV도 보고 성경도 읽는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처음에는 영등포의 상담보호센터에서 마포 공사장까지 출퇴근했지만 밤에 제대로 쉴 수가 없어 가까운 곳에 고시원 방을 얻었다. 한 달 월세는 18만 원. 하지만 월 100만∼120만 원씩 벌고 있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월세와 약간의 용돈을 제외하고는 모두 통장에 저축한다. 한 달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돼 버렸다.

“힘들지 않으냐고요? 그 정도는 각오가 돼 있습니다. 정당하게 일해서 보수를 받는 게 기분 좋습니다.”

김 씨는 노숙 생활에 빠져들기 전 노동일을 했다. 주식으로 대박 났다는 주변 얘기에 솔깃해 멋모르고 주식투자에 뛰어든 게 화근이었다. 투자했던 종목이 하락곡선을 그리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손실을 만회해야 한다는 욕심에 자꾸 돈을 빌려 밀어넣다가 가지고 있던 집마저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잦은 말다툼 끝에 아내와 이혼까지 했다.

김 씨가 소속된 협력업체 사장은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는 성실성을 높이 사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 같은 성공사례는 김 씨의 경우로만 그치지 않는다. 하루 5만 원(건설업체 2만5000원+서울시 2만5000원)의 일당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로 재취업했거나 재취업할 예정인 사례도 40∼50건에 이른다. 돈이 궁할 때 잠시 일하고 다시 일을 놓는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패(成敗)가 갈릴 뿐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6일 노숙인 600명의 첫 현장 투입 이후 공사장에 갈 차비가 없다는 노숙인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월급제를 주급제로 바꿨다가 곤란을 겪었다. 월∼금요일 5일간 일해서 번 25만 원을 손에 쥔 노숙인들이 다음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시 월급제로 돌아갔다. 또한 처음 며칠간 결근하면 바로 다른 노숙인으로 대체 투입하기도 했으나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지적에 따라 일정 시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옆에서 도울 수는 있되 일어서는 건 전적으로 노숙인 개개인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편 13일에는 500개의 새 일자리가 근로 희망 노숙인들에게 주어진다. 이번에는 공사현장뿐만 아니라 주차관리 경비 식당보조 물품배달 등으로 영역이 다양해졌다. 이충열 서울시 노숙인대책반장은 “노숙인은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임시계층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계층이 됐다”며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기대책으로는 사회 복귀로까지 이끌어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일자리 제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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