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교육부-검찰 총공세에 사학 한발 물러서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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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8일 오후 이해찬 국무총리(왼쪽에서 세 번째) 주재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사립학교법 관계 장관 회의에서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참석자들이 범정부 차원의 사학 비리 근절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훈구 기자
강경
8일 오후 이해찬 국무총리(왼쪽에서 세 번째) 주재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사립학교법 관계 장관 회의에서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참석자들이 범정부 차원의 사학 비리 근절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훈구 기자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가 8일 신입생 배정 거부 방침을 철회했음에도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로 나가는 것은 이번 기회에 개정 사립학교법에 반발하는 사학의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청와대의 강경 방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사학이 신입생 배정 거부로 나오자 이를 ‘헌법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밝힌 데 이어 7일과 8일 잇달아 대책회의를 열었다.

8일 청와대 회의에서는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는 사학에는 즉시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도록 임시이사를 공개모집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나왔다. 이어 임시이사 선정의 구체적인 방법과 대상까지 제시하며 사학들을 압박했다.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학의 신입생 배정 거부를 막아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사학들이 신입생 배정 거부 방침을 철회한 뒤 정부 대응의 주안점은 ‘학습권 보호’에서 ‘사학 비리 척결’로 옮겨진 듯하다. 정부는 8일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13개 관계부처장관회의에서 “사학 비리 척결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등장한 국민적 요청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시종일관 단호한 태도로 진행됐다고 김창호(金蒼浩) 국정홍보처장이 전했다. 김 처장은 “회의 도중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가 신입생 배정 거부 방침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회의 기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다른 의견이나 온건론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입생 배정 수용과 사학 비리 척결은 별개의 문제”라며 “이번 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총리 성명 또는 국무회의 의결 등의 형태로 더욱 구체적인 사안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시도교육청, 감사원, 검찰과 경찰 등 가능한 한 모든 기관을 동원해 사학 비리를 파헤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하지만 당초 이날 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던 이주성(李周成) 국세청장은 불참했다. 이 때문에 비리 척결 수위가 사학 재단 관계자 및 친인척의 세무조사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여권은 조사 결과 사학의 비리가 계속 터져 나온다면 개정 사학법 반대를 명분으로 장외로 나간 한나라당을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학들이 신입생 배정 거부 방침은 철회했지만 사학 비리 감사는 거부한다는 강경한 방침을 밝히고 있어 정부와 사학 간의 충돌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입장 선회한 사학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가 8일 시도회장단회의에서 신입생은 배정받되 사학법 반대 투쟁은 계속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 ‘배정 대혼란’의 고비는 넘길 수 있게 됐다.

협의회 회장단은 이날 회의에서 “신입생 배정 거부 운동은 사학의 기본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었으나 사학인들은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자 2006학년도 학생 배정을 절차에 따라 받기로 했다”며 “그간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협의회가 갑자기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는 청와대가 6일 사학비리 수사를 선포한 뒤 교육인적자원부가 8일 시도교육청 감사관 회의를 열고 정부도 관계 장관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결정한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13개 시도회장이 참여한 이날 회의에서 “정부가 모기 잡는 데 도끼를 휘두른다”고 불만을 표시하며 배정 거부를 재확인하고 사학 비리 수사를 거부하자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시도별로 신입생 배정일 간격이 길어 투쟁 분위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27일∼2월 11일 배정일이 몰린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 7대 도시에서는 배정을 거부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일부 회장은 정부의 사학 비리 전면수사에 대한 부담감을 표시하며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전략적으로 대응하자는 현실론을 펴기도 했다.

의견 정리가 되지 않자 7대 도시를 중심으로 거부 방침을 계속할지, 학생 배정을 수용할지 10일 이사회에서 결정하기로 한 뒤 일부 회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나 오후 6시경 나머지 회장들이 갑자기 ‘신입생 배정 거부 철회’ 보도자료를 내며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자 먼저 자리를 뜬 회장들이 김하주(金河柱) 협의회 회장에게 항의하는 등 내분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또 개정 사학법의 문제점을 떠나 학교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여론도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협의회가 배정을 수용키로 결정한 이상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신입생 배정은 차질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배정 거부 철회와 상관없이 비리가 있는 학교는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각개전투식 마찰이 계속 빚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권희태 협의회 수석부회장은 “지금까지 사학 비리가 많았다면 그동안 방치하고 유기한 교육부의 책임도 있다”며 “감사는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사학을 너무 몰아붙일 경우 사학들이 배수진을 치고 반발할 수 있어 배정 거부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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