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영국에서 배운다]<上>개발과 보존 共存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37분


코멘트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의 내부 입구 쪽(아래)과 옆모습. 건물 외부 벽돌벽은 화력발전소의 벽을 그대로 둔 것이고 위로 보이는 유리구조물은 리모델링 공사를 하며 새로 올린 것이다. 내부는 전면이 각 전시실로, 후면이 통로 겸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통로 전시관에는 현재 ‘소리예술’ 작품을 전시 중이라서 눈에 보이는 작품이 없다. 런던=장강명 기자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의 내부 입구 쪽(아래)과 옆모습. 건물 외부 벽돌벽은 화력발전소의 벽을 그대로 둔 것이고 위로 보이는 유리구조물은 리모델링 공사를 하며 새로 올린 것이다. 내부는 전면이 각 전시실로, 후면이 통로 겸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통로 전시관에는 현재 ‘소리예술’ 작품을 전시 중이라서 눈에 보이는 작품이 없다. 런던=장강명 기자
《청계천 복원과 도심 개발계획, 영등포·마포·청량리·용산 등 부도심 정비사업, 25곳에 이르는 뉴타운사업…. 서울은 지금 ‘재개발’ 중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종로의 피맛골과 중구 황학동 벼룩시장, 종로구 사직동 한옥촌 등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곳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개발과 보존은 항상 대립되는 걸까.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구(舊)시가지 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건축 활동을 하고 있는 영국의 ‘도시 재생(regeneration)’ 사례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영국 건축가와 도시계획자들이 쓰는 ‘재생’이라는 용어는 기존의 도시구조를 해치지 않으면서 도시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건축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전면 철거 후 새 도시를 짓는 우리의 재개발(redevelopment) 방식과는 다르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의 건축가들이 말하는 화두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한마디로 ‘미래에 개발할 여지를 남긴 채 천천히 개발하는 것’이다. 런던시의 자랑인 미술관 테이트 모던과 신금융지구인 카나리워프는 규모는 달랐지만 그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문 닫은 발전소를 미술관으로=유람선을 타고 템스 강변을 가다보면 세인트폴 대성당 건너편에 ‘ㅗ’자 모양의 큰 건물이 눈길을 끈다. 갈색 벽돌의 몸체 위에 유리 구조물을 얹은 형태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화력발전소를 개조했다. 2000년 개관한 미술관 건물 외곽의 80%는 1963년에 지어진 발전소의 모양 그대로다.

미술관의 마커스 홀리 관객서비스부장은 “미술관이 옛 발전소를 품고 있는 콘셉트”라며 “바닥의 껌 자국도 일부러 놔뒀다”고 말했다.

연간 이곳을 찾는 관람객 수는 당초 예상인 250만 명을 훨씬 넘는 400만 명. 미술관 뒤편으로 아파트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주변에 자발적인 재개발 붐이 일었다.

그러나 정작 테이트 모던의 리모델링 공사는 아직도 미완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지하의 유류 저장시설, 런던전기회사가 철수한 뒤 늘어날 공간, 굴뚝 부분을 전시실로 활용할 생각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세대에 걸친 지속 개발=템스 강 동쪽의 카나리워프 주변은 테이트 모던이 있는 구시가지와는 판이한 풍경이었다. 높이 244m인 원 캐나다 스퀘어 빌딩을 비롯해 초고층 빌딩들이 가득했다. 씨티그룹 유럽 본사와 HSBC 세계 본부가 이곳에 있다.

1980년대 초까지 이 지역은 몰락하던 부두 주변의 시립 임대주택가였다. 런던시정부는 이 일대 동부쪽의 낙후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1981년 런던 항을 폐쇄한 뒤 개발공사를 설립했다. 불과 20년이 안 돼 카나리워프 지역은 7만 명이 일하는 첨단산업지구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실제 공사에 들어간 지 18년째인 카나리워프는 아직도 전체 면적 200만m² 중 25%가량이 개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개발을 맡은 카나리워프그룹의 하워드 셰퍼드 고문은 “전체를 다 개발하면 현재의 대중교통 용량이 한계에 이른다”며 “도시기반시설을 확대하기 전까지는 개발을 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서울시 재개발… 빨리… 많이… 크게… 옛 모습 상당수 사라져▼

서울의 한강도 강변을 따라 재건축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폐쇄된 정수장 시설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수변공원으로 만들어 2002년 개장한 한강 선유도공원은 훌륭한 도시 재생의 사례. 침하 중인 쓰레기매립장 주변을 공원으로 만든 월드컵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민간에 개발을 맡겼다가 업체 부도로 유휴지가 된 한강대교 중간의 노들섬은 서울시가 다시 사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를 ‘대세’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현재 추진 중인 압구정동·반포 지역 한강변 아파트 재건축은 아직 도시 미관이나 도시 기능 활성화보다는 ‘주민들의 개발이익 극대화’를 첫째 목표로 삼고 있다.

청계천 주변도 복원사업과 함께 도시환경정비사업(옛 도시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 지역 재개발을 소규모로 점진적으로 실시해 기존 도시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의 이 같은 개발 방식이 고궁을 비롯한 문화재 중심으로 이뤄져 서민문화를 담은 거리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근대 건축물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