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성주]하버드大개혁에서 배울 것들

  • 입력 2005년 3월 20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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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하버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킴 클라크 하버드대 경영대학장은 ‘돈’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돈이 적은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문제라는 얘기였다. 사실 하버드대만큼 부자인 학교는 지구상에 없다. 학교 전체로 무려 226억 달러(약 23조 원)에 달하는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교수 1인당 110억 원 또는 학생 1인당 12억 원에 달하는 액수이며 북한의 추정 국민총소득(GNI)보다도 많은 엄청난 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기금을 주식 채권 부동산 해외투자 등의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어느 기관투자가보다도 높은 연평균 15.9%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기금이 5년마다 2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정상의 대학이 엄청난 돈을 가질 때 생기는 문제를 일반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최고의 위치에서 돈이 너무 많으면 누구나 자만하게 되며 발전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떨어지게 된다. 클라크 학장의 말도 하버드대에서 더 이상 ‘헝그리 정신’을 찾을 수 없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경고였다.

▼정상에서도 변혁 움직임▼

길게 보면 이러한 현상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영원히 1등일 것 같던 조직도 결국 자만의 늪에 빠져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새로운 1등이 나타나 자연의 보편적 공평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만 해도 세계 최고의 대학은 유럽에 있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프랑스의 파리대(소르본대), 그리고 19세기 초 독일의 빌헬름 폰 훔볼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현대적 대학의 효시로 탄생한 베를린대 등이 세계를 주도한 대학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대학들이 세계 대학을 리드하게 된 것은 급속히 성장한 경제력과 전후 최고 지식인들의 미국 이민, 실용적 대학의 혁신 아이디어가 주효한 때문이었다. 그렇게 최고의 대학이 된 하버드대도 혁신을 멀리해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 모르는 위기를 맞은 것이다.

2001년에 취임한 하버드대의 로런스 서머스 총장은 이러한 위기를 간파하고 하버드대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 핵심은 구태의연한 학부 교육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과학과 공학 분야를 확충하며, 비좁은 캠퍼스를 확장해 찰스 강 건너편에 제2캠퍼스를 건설하는 것이다. 서머스 총장은 교수들이 보상이 많은 연구나 외부 활동에 집중하기보다 본질적인 교육에 더 신경을 쓰고 학생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요구했다. 또 학부 교과과정을 바꾸어 생명과학을 포함한 공과대를 신설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에 대해 재단뿐 아니라 많은 교수들도 그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머스 총장의 개혁안은 내부로부터 심상치 않은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 대해 외부의 시각도 서머스 총장의 개혁안이 계획대로 시행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총장의 진퇴에 대한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돈이 더 이상 당근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과 세계적 명성을 얻은 교수들의 현실 안주 성향이 주요 이유로 작용했으나, 무엇보다도 목표 설정과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성공은 내부적 합의가 좌우▼

아무리 좋은 취지와 아이디어라도 독단적인 방식으로 개혁을 성공시키기는 어렵다. 힘들더라도 대화와 설득을 통해 실행 주체인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여 긴밀한 협조를 얻는 것 자체가 개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대학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개혁을 외치다 실패한 경우는 대부분 최고경영자가 구성원들의 동의와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 경우다.

이미 정상을 차지한 조직이 변화하고자 하는 것만큼 위대한 개혁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버드대 개혁은 우리에게 위대한 개혁을 위해 자만에 대한 경계와 함께 변화의 리더십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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