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사람들]<下·끝>자생적 공동체 문화

  • 입력 2005년 1월 25일 18시 01분


코멘트
《신도시에는 저마다의 독특한 향취가 있다. 주거여건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특정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어 신도시마다 차별화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는 것.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분당신도시(경기 성남시)에는 전현직 고위 관료, 군 장성, 대학 교수 등이 많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우리 사회의 영향력 있는 지식인 모임으로 자리 잡은 ‘21세기 분당포럼’은 이 같은 주민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단체다. 1999년 창설된 이 포럼은 그동안 사회 전반의 주제를 놓고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다. 현재 1600여 명의 회원 중 대학 교수가 676명이고 기업 임원이 467명, 언론인 47명, 의사 61명, 정치인 45명, 고위 공무원 45명 등이다.》

구성조(具盛助) 분당포럼 사무처장은 “분당에는 서울 강남에서 이사 온 회원이 많은데 서울 가는 교통이 편리하고 교육과 쇼핑시설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어서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이 살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분당신도시의 지식인 모임인 ‘21세기 분당포럼’이 지난해 9월 23일 개최한 수도이전정책토론회 모습. 신도시마다 각 지역 주민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동호인, 지식인 모임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수리산 자락의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산본(군포시)과 사통팔달의 위치에 있는 평촌(안양시)은 정부과천청사와 가까워 젊은 엘리트 공무원 가족이 많이 산다. 강남에 직장을 둔 중산층도 많아 산본역과 평촌역 등 서울행 전철역 주변에는 출퇴근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중동(부천시)은 서울과 인천 등으로 생활권이 나뉘며 고학력의 30, 40대 중산층 가정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산(고양시)은 문화예술인이 많이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형기 양택조 윤도현 김원희 양희은 현석 씨 등 일산에 사는 연예인은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 일산 거주 배우들은 극단 ‘자유로’를 결성해 부정기적으로 지역 무대에 작품을 올리고 있다.

박이문 연세대 명예교수, 시인 김지하 씨, 황필호 동국대 교수, 작가 최영미 씨, 영화감독 여균동 씨 등 문화계 인사도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산다. 또 신문사와 방송사가 밀집해 있는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가 가까워 언론인도 많이 산다.

일산신도시 문화 예술인 모임인 ‘고양문화포럼’ 회원들이 최근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갤러리 쉐브아&조각공원’에서 겨울의 서정을 즐기고 있다. 왼쪽부터 조각공원 류용규 대표, 손광운 변호사, 박관수 반디모아 대표, 한시작가 조갑녀 씨, 한국하모니카연맹 이혜봉 회장, 도서출판 보림 권종택 대표. 고양=이동영 기자

이런 특성 때문에 2001년 창립한 ‘고양문화포럼’의 경우 다른 신도시 모임에 비해 문화적 향취가 넘친다. 화가 교수 작가 언론인 출판인 등 100여 명의 회원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신도시 주변의 명소에 모여 초빙된 문화예술인의 ‘한 말씀’을 듣고 토론을 한다.

총무 역할을 하는 손광운(孫光雲) 변호사는 “신도시 조성 초기에는 삭막하기만 하고 이웃도 몰랐지만 10년이 지나면서 주변에 문화예술인이 많이 사는 것을 보고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도시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공동체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 관심이다.

4선 국회의원으로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낸 한병채(韓柄寀·72·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변호사는 “아침마다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면 따로 건강관리가 필요 없고 아파트 주변에 녹지공간이 많은 게 좋다”며 “한국에서 제대로 된, 유일한 도시라고 생각한다”고 자랑했다.

일산 인근 거주 신춘문예 등단 동화작가들의 모임인 ‘고양시 동화모임’의 길지연 작가는 “도시가 조용한 데다 널찍하고 아름다운 호수공원도 있고, 서울 오가기도 수월해 일산만 한 곳이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성남=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군포=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똘똘 뭉친 입주자대표회의, 주민 권익지키기 앞장▼

“아이 러브 분당!”
입주 15년째를 맞은 신도시들은 저마다 개성을 갖춰가고 있다. 비슷한 직업,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동호인 모임은 물론 입주자대표회의도 활발하다. 분당입주자대표회의 고성화 회장(가운데)을 비롯한 분당신도시 주민대표들이 25일 회의 후 중앙공원에서 ‘아이 러브 분당!’을 외치고 있다. 성남=김미옥 기자

신도시는 대부분의 주민이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자기 가족만 챙기고 동네일엔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 같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재산세 인상, 난방비 인상, 도로분쟁, 환경파괴 등 각종 사안마다 신도시 주민들은 그 어느 도시보다 크고 단합된 목소리를 냈다.

신도시 주민들이 똘똘 뭉칠 수 있는 중심에는 동일한 테두리 내에 살고 있다는 정서적 일체감을 토대로 활성화된 입주자대표회의가 있다.

이들은 신도시 입주 초기 기반시설 부족 등을 지적해 시정하는 활동을 토대로 조직력을 키운 뒤 세금 주거환경 교통문제 등 삶의 질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공동 대처해 왔다.

분당입주자대표회의 고성하 회장(60)은 “판교 톨게이트 통행료를 인하하도록 했고 재산세를 30% 내리도록 한 운동이 기억에 남는다”며 “하지만 지금도 분당 주변의 교통난, 종합부동산세의 부당성 등 바로잡아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일산입주자대표회의는 1995년 일산 상공에 비행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주민 요구를 관철시켰고 아파트 일반관리비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는 정부 방침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중동, 산본, 평촌 등 수도권의 각 신도시 입주자대표회의도 발전회사가 민영화되면서 난방비가 오르거나 갑자기 큰 폭으로 전기료를 인상할 때 등 생활 속의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주민들의 권익을 지켜왔다.

신도시 입주자대표회의는 2003년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2월 사단법인 체제의 경기도아파트 연합회 결성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성남=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