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밀면 어때요”… 대졸 구직자들 ‘기피업종’ 안가려

  • 입력 2004년 9월 21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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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모대학을 졸업한 김모씨(29)는 요즘 목욕관리학원에 다니고 있다. 소위 ‘때밀이’로 더 잘 알려진 목욕관리사가 되기 위해 하루 5시간씩 연습한다. 2002년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수십 군데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 후 중소기업 비정규직, 요식업체 서빙직종 등을 전전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김씨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이 때밀이다. 15∼29세의 청년실업자가 40만명에 육박하는 등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대졸자들이 때밀이, 구두닦이, 숙박업소 웨이터, 베이비시터 등의 직종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20, 30대 대졸 때밀이 많아=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목욕관리학원. 5명의 수강생 중 20대가 1명, 30대가 2명, 40대가 2명이었다. 20, 30대는 모두 대졸자로 취직에 실패한 사람이거나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낀 전직 샐러리맨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이모씨(32)는 “대졸이 때밀이나 하느냐고 비웃겠지만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중소기업도 다녀봤지만 월급도 제 때 안 나오는 등 비전이 없어 오히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면 매달 200만원은 벌 수 있는 때밀이가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모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이모씨(30·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생기기 시작한 사우나에 취직하기 위해 3주 과정의 목욕관리사 교육을 끝내고 이민 수속을 밟고 있다.


이씨는 “졸업 후 대기업에서도 일해 봤지만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일 엄습했다”며 “때밀이와 마사지 기술을 배워 미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W사우나교육원의 이모 원장은 “서울에 20여개, 전국적으로 40여개인 목욕관리학원에 지난해 말부터 젊은 사람이 많이 찾고 있다”며 “10명 중 3명은 20대로 상당수는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라고 말했다.

▽직종을 가리지 않는다=20, 30대 청년실업자들이 많이 찾는 또 다른 직종은 모텔 여관과 같은 숙박업소에서 손님을 안내하는 일.

서울 K대를 졸업한 박모씨(30)는 서울 신촌의 한 모텔에서 3개월째 일하고 있다. 그는 “격일 근무지만 한 달 수입이 100만원은 넘어 과외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며 “취업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막일이라도 해서 돈이나 많이 벌어 모텔 하나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한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숙박업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하루 평균 5통 이상 걸려오지만 자리가 없어 대기자만 10명이 넘는다”고 소개했다. 때밀이나 웨이터 생활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기술’은 구두닦이.

이 외에도 여성 대졸자들은 가사를 겸한 베이비시터로도 대거 몰리고 있다. 모 베이비시터 알선업체 대표는 “지난해에 비해 대졸 지원자들이 두 배가량 늘어 매달 40∼80명이나 된다”고 전했다.

명지대 이종훈(李宗勳·경영학) 교수는 “대학교육까지 받은 인재들이 단순기술직에 몰리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해”라며 “청년실업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때”라고 지적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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