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으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출산장려정책 엇박자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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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잠실에 사는 이모씨(35·회사원)는 3년 전 결혼하면서 아내와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하고 동네 비뇨기과를 찾아 2만여원을 주고 정관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최근 마음이 변해 아이를 갖기로 하고 복원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비용이 30여만원이란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출산을 장려한다면서 피임수술 때와는 달리 복원수술 하는데 이렇게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하면 누가 선뜻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가임 여성 1인당 출산율이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보이는 등 국내의 저출산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출산장려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출산정책에 일관성이 없었던 데다 일부 정책의 경우 오히려 출산 의욕을 꺾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또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책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낳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은 올해 상반기에만 4만여명. 지난해까지도 민방위훈련소에선 ‘인구억제 정책사업’의 일환으로 2만원만 주면 쉽게 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1960년대부터 인구 증가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민방위 정관수술’을 시행하다 1996년부터는 이를 포기하고 건강 증진에 목표를 둔 신인구정책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일선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지난해 6월까지 전국의 민방위훈련소에서 이 수술이 계속 시행돼 온 것.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에 따르면 민방위훈련소에서의 정관수술은 2000년 9060건, 2001년 7505건, 2002년 4852건 등으로 전체 불임수술의 7∼13%를 차지했다.

정관수술의 경우 처음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 반면 50여만원이 들던 복원수술은 지난달에야 뒤늦게 보험이 적용됐다. 그나마 30만원이나 될 정도로 비싼 편이다.

여성이 임신하면 반드시 한두 번은 받게 돼 있는 초음파검사 등의 산전 진단비용은 아직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최근 쌍둥이를 낳은 조모씨(27·서울 강동구 천호동)는 “산전 진단비용이 남들의 2배인 데다가 보험회사마저 조산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태아보험을 받아주지 않아 한때 유산도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오락가락하는 출산 장려정책=정부는 가임여성의 출산비율이 급격히 낮아지자 2000년 출산격려금과 육아양육비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한 출산장려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예산 부족에다 출산율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지난해 말까지 세 차례나 정책을 수정하거나 백지화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정부는 저출산 상황이 심각해지자 올해 1월 저출산에 대응해 출산을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라곤 자녀 교육비에 대한 세제 혜택 수준이고 나머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별로 시행되고 있는 출산장려정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게 고작이다.

전남도 등 일부 지자체는 아이 낳기를 꺼리는 신혼부부들을 위해 출산시 5만∼10만원의 축하금이나 30만원의 양육보조비 등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홍보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데다 출산을 장려하기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대도시는 양육보조비를 주더라도 보육원에 보낸 경우로 한정하거나 대상을 셋째 아이로 제한해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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