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규식/지친 그들에 일자리를 주자

  • 입력 2004년 1월 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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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 등 여러 사건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자.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절대빈곤층이 1996년 전체 가구의 5%에서 2000년에는 10.1%로 배나 늘었고 차상위 빈곤층을 합하면 14.77%로 570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빈곤의 수렁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가난을 대물림하는 경향마저 있다.

▼換亂이후 사회적 취약계층 확산 ▼

전체 근로자의 49.5%에 이르는 임시·일용직 근로자 가운데 상당수가 고용불안 속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받아가며 일하고 있다. 2003년 한 해 동안 20대 일자리가 18만개 줄고 일자리와 구직자들 사이의 불균형으로 청년 실업률은 7.6%(11월 현재)에 이르렀다.

여성, 장애인, 고령자들은 구직하기 힘든 것은 물론 일자리를 찾아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370만명(경제활동인구의 16%)에 이른 신용불량자들도 절망 속에서 인생을 포기하거나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의 경제 개편과 기업구조조정은 이런 식으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정규직과 비정규직, 잘나가는 수출 대기업과 내수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 사이의 골을 깊게 했다. 2003년 경기침체를 통해 그 그늘은 범위를 더욱 키워갔다. 사회의 통합성과 동질성은 약화되고, 불신과 잠재적 갈등은 커졌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원칙의 고수를 통해 이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이 요구된다. 이는 취약계층에 드리워진 그늘을 걷어내는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일자리, 특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국내외 자본의 중장기적 투자와 기업 안팎의 혁신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경기침체와 정치사회적 불확실성, 고용·임금의 경직성과 고비용 구조 등으로 인해 투자는 기피됐다. 기업혁신을 위해서도 대기업의 고용·임금 유연성과 중소기업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노사정의 사회적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안정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도 있다.

이는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며 일자리 창출의 근거다. 그런 토대 위에서 조직화돼 있지 못한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소득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고용 형태의 차별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격차를 완화할 사회통합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 취약계층을 위한 생산적 복지 강화 정책을 펴 왔으나 이는 여전히 경제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이제 경제사회정책은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 및 고용형태라는 이중의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산적 복지’ 정책의 우선 순위로 ▼

우리나라의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의 고용 비중은 2.0%에 불과하나 미국은 8.7%, 영국 11.1%, 스웨덴 18.4%에 이른다. 사회서비스 환경 보건 등 영역에서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통합 및 사회통합을 위해서뿐 아니라 곧 직면하게 될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탁아 및 교육훈련 통근 등 이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서비스도 동시에 개발돼야 할 것이다. 또한 취약계층이 일터에서 겪는 부당한 차별과 편견도 없애야 한다.

이런 사회정책은 중장기적으로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희망을 주는 데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는 초석이 될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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