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나홀로 공부' 홈스쿨링 어떻게 해야할까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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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가한 학생과 학부모 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 대화문화네트워크
17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가한 학생과 학부모 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 대화문화네트워크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링’에 관심 있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홈스쿨링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17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안 가요-홈스쿨링, 그 현황과 과제’(대화문화네트워크 주최)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모임에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청소년과 학부모, 양희창 간디중학교 교장, 김재웅 서강대 교육학과 교수, 현병호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발행인 등 30여명이 참가했다.

이 세미나에서 오간 내용을 소개한다.

●현황 및 과제

예전부터 종교적인 이유로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이 있었지만 최근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이 늘어가고 있다. 홈스쿨링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재교육의 일환으로 비친 측면이 있지만 실제로는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보통 아이들이다. 아이가 예민해서 학교의 억압적인 환경을 견디지 못하거나 부모가 학교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뚜렷하게 가진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의 수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미국에서는 약 200만명, 일본에서는 12만명가량이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서구 국가들은 홈스쿨링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초중등교육법에서 의무취학을 규정해 놓고 있어 이를 위반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이는 사법처분이 아닌 행정처분이므로 큰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이 법규 때문에 홈스쿨링을 망설이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을 문제아처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 때문에 홈스쿨링 참가자들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또 홈스쿨링을 위한 교재가 없고 참고할 만한 사례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서울여대 김선요 교수가 ‘크리스찬 홈스쿨링협회’를 만들어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홈스쿨링 가정들끼리 교류하며 자체적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홈스쿨링을 하려면 적어도 부모 중 한 명은 자녀의 학습에 시간과 정성을 쏟을 경제력이나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강요하거나 조기교육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아이를 통해 실현시키려는 경우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이를 위한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아이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 아이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것을 배울 줄 아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홈스쿨링에서 가장 중요하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홈스쿨링 체험담

홈스쿨링 참가자들은 이 세미나에서 홈스쿨링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이들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주제를 정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있다. 독일 발도르프학교의 수업 방법을 채택했다. 주제는 스스로 정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부모님이 보완해 주기도 한다.”(김민주·14·제주)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다. 1학년 때 철학 역사 수학 등 교양수업 등에서 홈스쿨링의 강점이 발휘됐다. 역사 방면 서적을 거의 다 읽었기 때문에 교양 공부에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공부 요령이 없어 전공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 요점을 파악한 뒤에는 전공 공부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노재경·24·대학생)

“아이에게 지적 영역이나 학습 등을 어떻게 보충해 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 학부모가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 고민했고 다행히 아이가 잘 따라주었다.”(이남수·학부모·울산)

“학교를 안 다니는 것에 대해 할머니가 많이 싫어한다. 설날 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1주일이 100일 같다. 이러다 보니 가족관계가 안 좋아지고 있다.”(김모양·11) “학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20%밖에 안 되는 것 같다. 80%는 부모가 책임지고 공동으로 협조해야 한다.”(양희창 간디중학교 교장)

잡지 ‘민들레’(www.mindle.org)와 기독교대안교육협의회(www.caeak.com)는 홈스쿨링을 위한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박솔잎양의 홈스쿨링

올 8월 서울의 도시형 대안학교 ‘스스로넷 미디어스쿨’에서 주최한 인도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박솔잎양.

울산에 사는 박솔잎양(15)은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10월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친구들끼리 성적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도 점차 줄어들어 학교 다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박양은 자퇴한 뒤 인천 강화도, 일본, 인도 등지를 여행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올 4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8월에는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박양은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에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며 그때까지 4년 동안 방송통신대에서 공부할 예정이다.

박양은 하루 2시간 정도 수학, 국사를 주로 공부했다. 헌 교과서를 사서 공부하기도 하고 기출문제집을 풀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교육방송도 많이 활용했다. 나머지 시간은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박양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외국어 공부 소재로 활용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 하루 2∼4시간 영화에 빠진 덕에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 실력도 많이 늘었다.

길 잃은 새끼고양이 3마리를 기르는 것도 박양의 주요 일과 중 하나. 박양은 청소년 또래 상담 교육을 받고 서울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지에서 자원봉사도 했다. 주말에는 풍물교실을 다니고 학벌철폐운동 등의 사회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양은 자기 스스로 시간표와 공부 방식을 결정하는 것을 홈스쿨링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느긋하게 자기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물론 계획한 내용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통제력은 필수다.

홈스쿨링은 혼자 지내다 보니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박양은 이에 대해 “학교에서도 사회성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면서 “또래는 물론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사회성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동지’인 홈스쿨러가 적다는 것. 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모이기도 힘들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박양을 문제아로 보는 사회 인식도 여전하다. 박양은 “혼자서 지내다 보면 따로 체력관리를 해야 하고, 공교육이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해 어떤 걸 배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양은 홈페이지(http://solip.sanha.org)를 만들어 자신의 생활을 정리해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박솔잎양이 말하는 홈스쿨링 좌우명▼

1.대화의 창 열기:자녀와 부모 사이에 마음을 열고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가족과의 화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천천히 살기, 경쟁의식 버리기:경쟁의식과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천천히 가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보게 된다.

3.돕고 살기:홈스쿨링은 정보가 부족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돕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4.당당해지기: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창피해하거나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행동할수록 만날 수 있는 홈스쿨러가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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