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제 도입 부처간 ‘엇박자’

  • 입력 2003년 10월 2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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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7월 퇴직연금제 도입을 골자로 한 노동부의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안’에 대해 산업자원부 등 경제부처가 반대하고 있어 입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2일 노동부에 따르면 산자부는 최근 법정 퇴직금제를 폐지하고, 퇴직연금제도 사업장별로 임의로 도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노동부에 공식 제시했다.

산자부는 또 퇴직연금제를 도입하더라도 사업주가 매달 일정액을 내주고 운용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확정기여(DC)형만 허용하자고 덧붙였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에 대해 1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연간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 일시금으로 지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에 더해 내년 7월부터 사업주가 퇴직금을 사외(社外) 금융기관에 쌓아 일시금 또는 다달이 연금 형태로 받는 퇴직연금제를 병행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1년 미만 근무자 및 4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도 단계적으로 퇴직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산자부의 의견은 사실상 이 같은 노동부의 퇴직금제 확대 방안에 대해 제동을 거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위원회도 금융기관이 상품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며 퇴직연금제의 실시 시기를 늦추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재정경제부는 아직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으나 4인 이하 사업장에까지 퇴직금제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경제부처의 반발에 노동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정위원회에서도 4인 이하 사업장으로의 확대를 뺀 대부분의 쟁점에 노동계와 경영계가 동의했는데 경제부처가 퇴직금 제도의 전면 손질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며 “재경부의 안이 제출되는 대로 실무회의를 열어 의견을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산자부가 퇴직금제의 축소 적용 의견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경영계는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퇴직금 제도는 한때 유일한 노후 및 실업대책이었지만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현 상황에선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돼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법정 퇴직금제가 있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재웅(李載雄)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산자부의 의견대로라면 현재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88%의 임금 근로자는 물론 노조의 힘이 약한 사업장에서도 퇴직금제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비판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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