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데 포장지에 파리유충까지… "학교 밥 싫어요"

  • 입력 2003년 9월 5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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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낮 12시20분경 서울 종로구 청운중 3학년생 교실 복도. 학생들이 급식 차례를 기다리며 식판을 들고 줄지어 서 있었다. 이 학교는 식당이 없어 학교 조리장에서 요리한 음식을 교실까지 가져와 배식해야 한다. 학부모가 한 끼에 2400원을 부담하는 이날 급식 메뉴는 볶음밥과 우거짓국, 깍두기, 제육볶음, 튀김. 3학년 박모군(16)은 “메뉴가 단조롭고 가끔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서울 K고. 이 학교 2학년생 김모군(17)은 학교 급식 대신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급식이 맛이 없어 매일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학교 급식을 실시하는 학교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질이 낮아 시비가 잇따르고 일부 학교에서는 조리시설의 위생상태마저 부실해 식중독 사고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학생의 불만을 사는 급식의 품질=서울 K고 교감은 “주변 학교보다 급식의 질이 높은 편인데도 전교생 2000명 가운데 400명은 급식을 거부하고 집에서 도시락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이 학교 급식을 거부할 정도로 질이 낮은 것은 정부가 한정된 예산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학교 수를 늘리기에만 급급해 왔기 때문이다.

1996년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위탁급식제도가 도입된 것도 학교에 조리장과 식당 등 설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급식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한 끼에 2000∼2500원 선인 급식비에서 위탁급식업체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일정액을 떼어내면 식재료나 안전설비 등에 투자할 금액은 그만큼 적어진다.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의 김정명신 대표는 “모든 급식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정부에서 값싸고 질 좋은 식재료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위탁급식을 하더라도 학교운영위원회가 1년 단위로 급식업체와 계약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식 안전 비상=부실한 급식 제도에서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올 8월 말까지 전국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급식 식중독 사고는 35건 3625명으로 지난 한해 동안의 9건 806명에 비해 4배가량 늘었다.

5일 서울 J중학교에서 학교 급식을 먹은 학생 16명이 복통과 설사 등의 증세를 보였다. 지난달 27, 28일에도 서울 J고와 C중에서 위탁 급식을 받은 학생 154명이 복통과 설사 등 식중독 증세를 보였으며 2월에는 4년 만에 처음으로 겨울철 식중독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와 올해 발생한 급식 사고 가운데 감염 경로가 밝혀진 것은 단 한 건도 없어 더욱 문제다.

▽사고 더 많은 위탁급식=올해 발생한 학교 급식 식중독 사고 가운데 위탁급식 학교에서 발생한 사고는 학교 직영 급식의 15배나 된다.

전국의 학교 급식은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 직영이 99.3%나 되지만 중고교는 각각 67.9%, 46.9%에 불과하다. 특히 서울에서는 중학교의 100%, 고교는 96.6%가 위탁급식을 받고 있다.

배옥병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위탁급식을 하는 한 학교에서 최근 음식물에서 파리 유충이 발견됐으며 포장 비닐 등 이물질이 발견된 사례도 수없이 많다”고 주장했다.

위탁급식업체는 설비 비용만 8000만∼1억5000만원가량을 부담하고 계약기간 3년 이내에 이 비용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값싼 식재료를 사용하게 되어 오염 등 문제점이 발생하기 쉽다는 것.

급식업체인 ㈜아라코 정순석 대표(59)는 “정부는 급식비의 65%가량을 식자재비로 사용하라고 하지만 이 기준을 지키면 적자를 본다”며 “정부가 재정 지원과 시설 개보수 등을 통해 급식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지자체 학교급식 지원 팔걷어▼

안전한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 사용하도록 규정한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전남도의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했다.

이 조례는 자치단체가 일선 학교에 급식 재정을 지원하도록 규정, 학부모의 급식비 부담을 줄이고 급식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 농산물의 판로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의회는 5일 본회의를 열고 ‘전남도 학교급식 재료 사용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이 조례는 유전자 조작이 없거나 농산물 품질관리법 등 국내법 규정에 맞는 농축수산물을 급식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 조례는 △전남도가 우수한 농산물 구입비를 지원하고 △도교육청이 지도 감독을 맡으며 △자금 배분이나 농산물 구입 방법 등 민감한 사안은 전남도에 설치될 ‘학교급식 지원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전남도는 행정자치부에 조례를 송부해 재의(再議) 요구가 없을 경우 이를 공포하고 10월 중 2004년도 학교급식 재료 사용 및 지원 예산을 편성할 방침이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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