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 비자금 파문]검찰이 밝힌 돈 전달 과정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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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이 현대에서 받은 비자금 200억원은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경영한 현대 계열사에서 현금으로 마련한 뒤 권 전 고문에게 모두 현금으로 전달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현대비자금을 돈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무기중개상 김영완(金榮浣)씨는 현금 200억원을 건네받아 권 전 고문에게 전달하는 ‘중개’ 역할을 했다. 김씨는 1988년 권 전 고문을 처음 만났으며 98년 12월에는 1억원을 들여 권 전 고문이 거주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 S빌라의 인테리어 공사를 해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대북 송금 의혹 특별검사 수사 당시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건네진 150억원을 돈세탁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

정 회장은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 권 전 고문으로부터 “돈이 필요하니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3월경 현금 200억원을 마련했다는 것.

정 회장은 당시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 등 현대 고위간부들에게 자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현대상선과 현대건설 등 계열사 자금담당 실무자들은 마련된 비자금 200억원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돈은 사과상자보다 큰 서류상자에 3억, 4억원 단위로 담겨 승용차나 승합차편으로 한 번에 15∼20상자씩 4차례에 걸쳐 김씨에게 건네졌다. 당시 돈을 나른 운전사는 검찰에서 “트렁크와 뒷좌석에 현금상자가 가득 차 교통사고가 나면 돈이 터져 나갈 것 같아 걱정했다”고 진술했다.

김씨와의 ‘접선’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변의 주차장과 이면도로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뤄졌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현금 전달은 대부분 어둠이 깔리는 저녁시간에 첩보영화의 한 장면처럼 은밀하게 진행됐다는 것.

현대에서 받은 돈을 김씨가 권 전 고문에게 전달한 과정은 이번 수사에서 그 전모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수사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권 전 고문측은 김씨가 ‘배달사고’를 냈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검찰은 당시 운전사 등 현금을 옮긴 실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현금 200억원이 모두 권 전 고문에게 전달됐다는 일부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 아니라 정 회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권 전 고문이 돈이 전달된 이후 (나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잘 받았다’는 말도 전했다”는 진술을 남겼다. 현대에서 받은 돈을 수송한 김씨 집 운전사들이 본보와의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돈은 김씨의 평창동 자택으로 옮겨진 뒤 김씨가 외출할 때 수시로 들고 나갔다(본보 6월 30일자 A1면 보도). 하지만 운전사들도 돈을 자택으로 옮긴 후, 김씨가 누구에겐가 건네주러 간 상황은 정확히 기억하지만 돈의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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