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교육정책 中心부터 잡아라

  • 입력 2003년 5월 12일 18시 22분


코멘트
요즘 우리나라 교육 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전교조와 교육부의 줄다리기는 정권이 바뀌어도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전국교장단과 전교조의 대립은 집단적인 실력행사까지 불사할 태세다. 여기에 교총과 여러 학부모 단체들도 성향에 따라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매우 혼란스럽다.

▼비전없이 현안대응 우왕좌왕 ▼

물론 민주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다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계의 문제는 이처럼 극단적으로 갈린 의견을 발전적으로 수렴할 주체와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혼란을 수습해야 할 1차적 책임이 있는 교육당국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등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문제가 터지는 곳마다 열심히 찾아가기는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도 제대로 끄지 못하는 무능력만 드러내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교육 당국의 푸념처럼 오랫동안 뒤엉킨 교육계의 문제를 한번에 명쾌하게 해결할 정책 방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를 보면서 많은 국민이 절망감을 느끼는 이유는 현재 우리 교육이 지닌 문제가 매우 심각할 뿐 아니라 앞날의 희망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앞으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청사진이나 정책의 큰 그림이 있다면 참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비전조차 보이지 않기에 절망하는 것이다. 비전이 없기에 현안에 대한 대응이 우왕좌왕하게 되고, 논의의 초점이 본질적인 면을 벗어나 지엽적인 문제에서 맴돌고 있다.

물론 정부가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제적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무기력함을 자인하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정부는 사회적 의제(agenda)를 제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역균형발전이나 언론개혁에 대해 참여정부의 지속적인 의지 표명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와 관심의 초점이 되었을까. 마찬가지로 교육에 대해서도 정부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원대한 인재 양성 계획을 제시하고 추진했다면 지금처럼 집단이기주의에 끌려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온 국민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참여정부는 이에 대한 밑그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직속의 여러 위원회들이 구성되어 이미 활동하고 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제안된 교육 혁신에 관한 위원회는 아직 구체적 추진 일정조차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교육 정책에 관한 큰 그림 그리기를 이처럼 방치할 정도로 우리의 주변 여건은 한가롭지 못하다. 국내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교육 집단끼리 주도권 다툼을 하는 동안, 이미 많은 학생과 학부모는 우리나라에서 교육받기를 포기하고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해외 유학 및 연수에 쓴 금액은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42%를 넘는 45억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같은 국부의 유출도 아깝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우리의 교육이 장래 국가 경제를 이끌어 나갈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기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10년 뒤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산업계의 커다란 화두로 대두된 지 오래지만, 교육계는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태세조차 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고교 졸업생의 학력 저하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창의력 있는 다양한 교육’도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10년 뒤의 ‘국제적 낙오’ 걱정 ▼

10년 뒤 우리의 자식들이 국제 경쟁에서 낙오한 뒤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사실을 한탄할 때, 빛바랜 이념에 사로잡혀 주도권 싸움이나 한 오늘의 교육 주체들과 소신 없이 이쪽저쪽 눈치만 본 정책 당국자들은 과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