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허병섭/'환경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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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지난해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일이다.

3월 3일 경남 함양군 백전면에서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최초의 대안대학, ‘녹색대학’이 출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녹색대학이 품은 꿈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생태계가 그 본래의 생명력을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 우리나라가 환경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최하위권에 머물 것이다. 그렇다면 녹색대학은 우리나라가 환경 올림픽에서 상위 입상을 할 수 있도록 선수들을 양성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드러내는 과학과 기술, 산업과 경제, 정치와 제도, 교육과 문화의 병폐를 치유하는 치료사를 양성하려 한다. 제대로 된 치료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그 오만과 탐욕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배움의 자리를 환경과 생태가 덜 훼손된, 지리산 옆의 백운산 자락으로 잡았다. 이곳에서 우리 손으로 농사하고 집 짓고 옷을 해 입으면서 생명과 생태적 기운과 풍수를 과학으로 철학으로 윤리학으로 체험할 것이다.

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녹색대학에 입학한 37명의 학생들은 교수진과 함께 녹색문화학-녹색살림학-생명농업학-생태건축학 등 생태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저마다 나이와 고향, 생각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자급자족하는 ‘생태공동체’를 꿈꾼다.

녹색대학은 이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담고 있는 한 송이의 꽃이며 향기이다. 며칠 전 우리는 일본과 호주, 그리고 미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4강 심포지엄’을 하면서 세계를 걱정하기도 했다. 강대국의 통제를 받고 있거나 세계 재벌의 눈치를 살피는 유엔의 환경회의와는 전혀 다른 심포지엄이었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자리는 농촌이다. 산이 있고 들이 있으며 계곡에는 오염되지 않은 물이 흐르고 들에는 농부들이 쟁기로 논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있다. 들에는 파릇파릇 쑥과 개망초, 냉이가 자라고 산수유와 벚꽃이 제 몸을 단장했다. 치솟아 오르는 녹색의 생명을 시샘하듯 아직 이곳 산자락에는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감돌고 있다.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는 힘이 차서 찬바람을 몰아내려는 듯 시위를 한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교실에서 배운 것을 논과 밭에서 검증하고, 논과 밭에서 체험한 것을 교실에서 검증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염된 지식과 생활을 깨끗하게 정화한 ‘물(학생)’과 ‘샘(교수)’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미숙하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와 함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수천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을 만큼 시설도 되어 있지 못하고 기숙사도 임시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은 녹색대학을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에 간혹 힘들어하고 지친 모습도 보인다. 샘님들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어깨를 겯고 일으켜주며 끌어당기면서 신음하고 있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개학한 뒤 우리의 생활은 무척 바쁘다. 이런 바쁜 생활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게 아니다. 녹색대학 안에서는 누구도 일을 시키지 않는다. 샘이나 물, ‘여울(직원)’은 모두 ‘평등한 관계’다. 모든 것은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오늘도 자정이 되도록 여과되지 않은 발언들을 하며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의 가슴속에 ‘생명전사’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무질서한 말들 속에서 생명의 질서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환경 올림픽에서 모든 생명을 살리는 ‘물’과 ‘샘’의 능력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약력 ▼

1941년생. 1970, 80년대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동월교회 목사로 일하면서 빈민운동. 1996년 농사를 짓기 위해 전북 무주로 이주. 1999∼2002년 대안학교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운영위원장

허병섭 녹색대학 교수·생태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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