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모래알 학교’ 대책은 없나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9시 15분


‘교사가 학생의 공부에 무관심하다면, 교사가 학생에게 의견을 밝힐 기회도 주지 않는다면, 교사가 학생의 공부를 돕지 않는다면, 학생이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만약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이렇다면 학교가 교문을 열어 둘 필요가 있을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0개 회원국의 15세 학생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은 ‘교사와 수업’에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의 핵심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 ‘관심’이나 ‘애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의 존재이유를 흔들 수 있는 기 막히는 현실인데도 학교교육을 우려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더 충격적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교사는 출근하고 학생은 등교하는 일상에 묻혀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기 때문일까.

일부러 이야기를 꺼내자 몇몇 교사들은 ‘교사들이 정체된 직업인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 ‘학교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는 게 아니냐’ 같은 걱정들을 보였다. 분명히 비정상적인 학교풍경이지만 그렇다고 책임있는 목소리는 없다. “요즘 학생들은 말도 안듣고…” “학원보다 못 가르쳐서…” 같은 핑계와 구실만 무성하다.

교사들의 출근시간은 오전 8시 반. 8시간 근무하고 오후 4시 반에 퇴근해 오후 6시면 깊은 산속 암자처럼 고요해지는 학교가 많다.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 부담’이라는 말은 이미 지겹다. 학교에서 선의의 경쟁과 열정이 사라지면 사교육에 대한 의존은 더욱 커질 것이다.

경기도 성남지역의 한 청소년단체에서 중·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 가량이 ‘학교를 그만두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답했다.

한비자(韓非子)에는 ‘망할 징조’라는 뜻의 ‘망징(亡徵)’편이 나온다. 학교를 구성하는 교사와 학생이 ‘제 팔 제 흔들기’식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것은 하나의 ‘망징’이 아닐까. 더 늦기전에 교사 학생 학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무너지는 교단을 다시 세울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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