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서울시교육청의 무리한 홍보

  • 입력 2002년 6월 23일 18시 57분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선행학습의 폐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선행학습을 많이 한 학생은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고, 길게 보면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이 안 되는데도 공교육을 불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의 의뢰를 받은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이 연구를 위해 고3 수험생 1000여명의 중고교 성적을 역추적해 과외를 받은 학생과 받지 않은 학생을 비교해왔다. 그 결과, 과외를 오래 해도 성적이 많이 오르지 않고 어떤 과목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최초의 연구인데다 연구 결과도 교육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교육청이 연구 결과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연구 보고서의 전체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중간발표라며 ‘선행학습 무용론’에 유리한 내용만 발표했다. 이는 나무 몇 그루만 보고 숲을 논하는 셈이어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교육청은 21일 KEDI가 발표하는 형식을 빌려 ‘과외비를 많이 쓴 학생의 성적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냈다. 성적이 올라간 상위 20% 집단의 7개월간 과외비가 39만4300원인 데 비해 성적이 떨어진 하위 20% 집단은 42만4600원으로 3만원을 더 써도 성적이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증거가 부족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KEDI 관계자는 제대로 답변조차 못했다.

교육학 교수들조차 “하위권 학생들이 과외를 많이 하는 것이 현실인데 과외비 차이로 과외 효과를 단순화할 수는 없다”며 “KEDI가 정말 그런 자료를 냈느냐”고 반문했다.

더욱이 이런 결정을 홍보대행사가 좌지우지하면서 시교육청 내부에서조차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언론 플레이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자료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정도라는 점을 시교육청 관계자들은 알았으면 한다.

이인철기자 사회1부 inchu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