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 밀어주기 논란… ‘소비자 피해’가 판단 기준 돼야[기고/김대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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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정부가 KC인증을 받지 않은 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나섰다가 철회한 이유 중 하나는 높은 물가와 매일 사투를 벌이는 엄마들의 반발이었다. ‘맘카페’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값싼 직구를 금지한 흥선대원군식 쇄국정책이다”는 식의 격한 반응이 나왔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는 고공 행진하는 통에 맘카페에는 시시각각 호주머니 부담을 줄이는 ‘꿀팁’이 쏟아진다. ‘해외 직구에서 2000원짜리 품질 좋은 티셔츠를 샀다’며 해당 사이트를 링크하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사실 중국산 제품이 대체로 국산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엄마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치솟는 물가로 단돈 100원이라도 아끼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과 비주류음료’ 물가상승률은 2월 기준 6.95%로 OECD 평균(5.42%)을 넘어 조사 대상 35개국 중 3위였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같은 해외 직구 사이트에 소비자들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이 자체 브랜드(PB) 상품 등을 검색 상단에 노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29일엔 전원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공정위는 소비자 선호도, 판매량 등을 반영한 ‘쿠팡 랭킹순’과는 달리, 쿠팡이 자의적으로 PB 상품을 상단에 노출해 소비자를 기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 판단처럼 쿠팡이 정말 인위적인 상품 밀어주기를 통해 소비자에게 중대한 피해를 야기했다면 당연히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 임직원을 동원해 PB 상품을 밀어줬다는 의혹에 대한 면밀한 조사도 필요하다.

다만 일각에선 유통업의 본질이자 고유 권한인 ‘상품 진열 순서’를 규제하는 첫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가 소비자 기만 피해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채 “마음대로 상품을 진열하지 말라”는 취지의 조치를 내릴 경우 다른 유통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선택권 제한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공정위 제재가 내려진다면 설령 노출 알고리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PB 상품을 상단에 배치하긴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싼 기저귀나 분유를 사려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불만일 것이다. 오후 11시 50분쯤 서둘러 원하는 상품을 결제해 다음 날 새벽배송을 받으려는 엄마들은 울화통이 터질 수 있다.

공정위는 유통기업 고유 권한인 상품 진열로 소비자들이 정말 부당한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누구나 납득할 만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아직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경쟁당국이 PB 상품 진열 순서를 규제한 선례는 없다. 독일 알디(Aldi)는 값싼 PB 상품 비중이 전체 판매액의 80%가 넘어 물가 안정에도 적잖은 기여를 한다.

불법적 요소에 대해선 단호하게 처벌하되, 신중한 판단이 전제돼야 하는 이유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pb#밀어주기#소비자 피해#판단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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