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아시나요]인천상륙작전 길밝힌 국내 등대 1호

  • 입력 2002년 6월 21일 18시 46분


《1950년 9월 14일 밤 8시. 인천 앞바다에 정박중인 연합군 기함(旗艦) ‘마운트 매킨리’에서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는 최규봉 KLO(Korea Liaison Office·미 극동사령부 한국 연락사무소) 부대장에게 미장교 3명을 포함한 부대원 6명을 이끌고 가 ‘팔미도(八尾島·중구 무의동 산 372) 등대’의 불을 밝힐 것을 명령했다. 최 부대장 등은 이날 밤 10시 KLO 부대 주둔지인 영흥도를 출발했다. 이들은 적의 감시망을 피해 칠흙같이 어두운 밤바다를 뚫고 팔미도에 도착, 밤 12시경 등대의 불을 밝혔다. 이어 “전군은 상륙을 시작하라”란 명령이 각 함정에 하달됐다.

7개국 7만5000여명의 병력을 실은 261척의 연합군 함대는 팔미도 등대의 불빛을 따라 영흥도와 무의도 사이의 해로를 타고 15일 새벽 6시 월미도 해안에 상륙했다.》

아마 팔미도 등대가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03년 6월 1일 세워진 팔미도 등대는 국내 등대의 효시.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14.8㎞ 지점에 있는 섬 팔미도(면적 약2만3000평)에 높이 7.9m, 지름 2m의 원형 2층탑으로 세워져 있다.

애초 팔미도에 등대를 세운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인천 앞바다의 길목에 위치한 팔미도의 지리적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이들이 이곳에 등대를 세운 것은 1904년 러·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등대가 들어선 당시는 물론이고 요즘도 위성항법 정보시스템과 레이더 등 최첨단 항해장치를 갖추고 있는 상선에서부터 어선 등 소형 선박에 이르기까지 밤에 이곳을 지나는 모든 배는 이 등대의 불빛에 의지해 항해의 방향을 잡고 있다.

팔미도는 한국전쟁 뒤 우리 해군이 주둔해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현재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소속 팔미도 전탐 감시대(레이더 부대) 부대원 60여명이 선박의 검문·검색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하지만 등대는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관리하고 있다.

해마다 9월15일을 전후해 팔미도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기리기 위한 기념식이 열리지만 올해는 월드컵대회 때문에 개최 계획이 없다.

이 등대는 54년 9월 자가 발전시설을 갖춰 백열등을 밝히기 전까지 석유등에 불을 붙여 운항하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 뒤 수은등을 잠시 사용하다가 촉광이 뛰어난 할로겐 등으로 바꿨고 지금은 태양광 발전장치를 사용해 등대불을 밝히고 있다.

올해 1월 인천시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팔미도 등대에는 허근 소장(57) 등 3명의 등대지기가 3교대 근무를 서고 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노후화함에 따라 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팔미도 등대를 그대로 보존하고 등대 바로 옆에 3층 높이에 원형 탑 모양을 한 새 등대를 신축할 계획이다. 팔미도 등대의 수명이 다해 더 이상 수리·보수만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

30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팔미도 등대 신축 사업은 현재 실시 설계가 끝난 상태로 올해 말 공사에 들어가 내년 6월 1일 팔미도 등대 점등 100주년 기념식을 즈음해 새로운 불을 밝히게 된다.

인천상륙 작전 당시 KLO부대장으로 팔미도 등대의 불을 밝힌 유일한 생존자 최규봉 옹(80·서울 동대문구 신당동)은 “팔미도 등대는 우리 민족과 고난을 함께 해 온 역사의 상징물”이라며 “등대 건립 100주년을 맞아 새로 등대를 짓지만 과거의 아픈 역사를 가슴에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등대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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