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외국인’ 병역기피 심각

  • 입력 2002년 2월 5일 15시 33분


가수 유승준씨의 병역 기피 문제가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일부 부유층 자녀나 연예인 등을 중심으로 합법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사례가 많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합법적 병역 기피’ 는 병역 의무가 있는 만 18∼35세의 남자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병역을 면제받는 것으로 법적으로는 하등 문제가 없지만 사회적 통념이나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합법적 병역 기피자가 한국을 생활 근거지로 삼고 있고 본인들도 한국인으로 행세하며 또래의 한국인과는 달리 병역 면제와 취업 등 여러 측면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공동체 의식을 깨뜨린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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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없는 특혜=5일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 국적의 동포로 거소(居所) 신고 를 하고 현재 국내에 살고 있는 남자는 모두 1만3662명으로 이 중 55.2%인 7538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갖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상당수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외국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국내 모 대학에 재학중이던 1994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간 A씨(32)는 한국을 오가며 국내 대학을 졸업했다. 그가 국내 대학을 졸업한 이유는 캐나다 시민권이 나오기 전까지 군 입대를 연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입대를 연기하다가 캐나다 시민권을 받은 직후 자퇴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83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가서 대학을 졸업한 B씨(27)는 지난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뒤 귀국해 현재 국내 유명 외국어학원에서 고액을 받으며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영어 하나만으로도 취업의 길이 널려 있다” 며 “국적만 미국일 뿐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다” 고 말했다.

98년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해 병역이 면제된 C씨(28)는 현재 국내 외국계 증권사에서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호화 아파트까지 제공받고 내국인은 출입할 수 없는 호텔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드나드는 등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박탈감과 형평성의 문제=합법적 병역 기피는 대부분 부유층이나 연예인 등이 주로 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 이들의 생활 근거지가 한국이기 때문에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밖에 없는 또래의 한국인과 비교할 때 취업이나 진급 등에서 형평성 문제도 야기된다.

회사원 동민준씨(29)는 “부모 잘 만나 외국에서 살다온 덕분에 군대도 가지 않고 좋은 대우를 받고 일하는 것에 분노가 치민다” 며 “정부가 합법적 병역 기피를 방치한다면 ‘병역 기피성 외국 국적 취득’ 은 계속 늘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훈·김선미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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