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한국 인권 현주소中]머나먼 '인권 선진국'

  • 입력 2001년 11월 28일 18시 36분


뇌성마비 장애인인 오모씨(31)는 5월 휠체어를 사용하는 다른 장애인 친구 2명과 맥주집에 들어가려다 거절당했다.

다른 손님이 장애인을 꺼리는 데다 번거롭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오씨는 다른 술집으로 옮기려 했으나 다른 두 곳에서도 같은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는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26일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에 낼 진정서를 준비 중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여전하다. ‘인권국가’는 아직도 요원한 ‘유토피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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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억눌린 인권' 폭발
- <中>머나먼 '인권 선진국'
- <下>인권개선 어떻게…

▽인권침해 실태〓법적, 제도적 문제나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못지 않게 다양한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 등 사회 구석구석의 숨겨진 피해 사례는 많다. 이는 사회, 문화적 가치관이나 국민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더욱 뿌리깊은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장애인 인권문제. 뇌성마비 장애인인 배모씨(31)는 얼마 전 공무원 시험에서 “손떨림이 있으니 답안지를 대필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40대 여성 방모씨는 지난해 치과에 갔다가 “병균이 옮을 수 있으니 목발을 밖에다 두고 들어오라”는 ‘황당한’ 지적을 듣고 진료를 포기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험 가입이나 주택 임대를 거절당하고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월급을 차등지급받는 경우도 상당수.

재소자 인권문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청송감호소에 수감 중이던 박모씨는 지난해 1월 항문에서 출혈이 계속되는데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 6개월 뒤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인권침해의 주 대상이 되는 또 다른 집단은 여성. 성폭력과 직장 내 성차별, 사회 진출이나 승진 기회의 제한, 호주제 등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동성애자, 난민신청자,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 등에 대한 차별과 아동학대 문제 등도 산적해 있다.

▽국제사회가 보는 한국의 인권상황〓우리나라는 1946년 유엔인권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여성과 인종차별 철폐, 고문 금지, 난민 등에 대한 여러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했으며 93년부터는 유엔인권위원회 위원국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이 정기적으로 내놓는 인권보고서 점수는 상당히 낮은 편. ‘단골메뉴’로 거론되는 문제는 국가보안법과 준법서약서, 재소자 및 노동자의 표현의 자유, 성차별 등이다. 유엔인권이사회는 99년 인권보고서에서도 가부장적 사회분위기에 따른 여성차별과 가정폭력, 모호한 국가보안법 규정 적용, 수사기관의 비인도적 처우와 피의자 구속문제, 집회의 과도한 제한 등을 지적했다.

▼“사소한 인권침해도 곧바로 人權委진정”▼

인권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국민의 인권의식변화가 예상되자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경찰청은 29일 지방청장과 경찰청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참석하는 ‘전국 경찰 지휘관 회의’를 열고 인권위 출범에 따른 대책 등을 논의할 예정.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이제 사소한 인권침해 행위라도 곧바로 인권위에 접수될 것”이라며 “형사계와 교통사고조사반 등 대민 접촉이 많은 부서의 경우 업무를 처리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검의 한 관계자는 “인권위 출범으로 피의자 소추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인권위의 민원으로 넘어가게 되면 웬만한 수사는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며 “법원도 적법절차에 따른 증거만을 인정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수사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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