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진 대한의협회장 인터뷰]"뇌사인정 현실 반영하자는것"

  • 입력 2001년 11월 21일 18시 19분


《정치세력화 선언, 뇌사 인정 내용을 담은 의사윤리지침 발표 등으로 최근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신상진(申相珍·45) 신임회장을 20일 서울 용산구 이촌1동 의협회관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놓인 각종 서류,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등이 40대 중반의 의욕을 느끼게 해준다. 지난달 20일 의협 사상 처음 행해진 직선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돼 27일 취임했으니 아직 한 달이 채 못됐다. 》

-정치세력화 선언을 ‘집단이기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고 의사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법정단체가 설립 목적에 없는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문제라는 법조계 의견도 있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의료계나 국민이 끌려왔다. 현장을 잘 아는 의사가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 건강과 의료계 발전을 위해 바른 의견을 전하자는 것이 정치세력화 선언의 근본 이유다. 정치세력화가 의협의 설립 목적에 어긋난다는 점에 관해서는 숙고해 보겠다.”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데 다시 ‘밥그릇 싸움’을 벌이자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층도 있다.

“93년 역사를 가진 한국 의료계가 단체행동을 통해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의사들이 왜 그랬는가를 평가해주어야 한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하려 하자 의사들이 의료재정 파탄, 임의조제 존속, 약물 오남용 여전 등을 이유로 반대했는데 이제 우리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됐다. 따라서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 요구는 당연하다.”

-당초 내년에 시행하려던 건강보험 재정 통합이 정치권의 이견으로 시행이 불투명해졌다.

“통합 계획은 재고돼야 한다. 징수율 저하, 지역의보가입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이 20∼30%에 불과한 점, 관리는 소규모로 해야 견실한데 국가차원의 관리기구로 커지며 생긴 도덕적 해이, 97년 통합 추진 이후 악화된 재정 등은 모두 건강보험 통합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의료보험 체계를 전면 개편하자는 것인가.

“한국의 의료보험은 70년대 북한과 체제 경쟁을 하던 분위기에서 도입됐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의료 수혜에 대한 다양한 욕구는 더 이상 획일적인 보험체제로는 수용하기 힘들다. 중질환자, 고비용 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되는 현 의료보험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해 병원이 문을 닫자 해외로 치료를 떠난 사람도 있었다. 환자를 인질로 삼아 투쟁할 바에야 외국 의사에게 국내 시장을 개방하라는 말도 있었다.

“쉽게 개방해서는 안 된다. 자본력을 앞세운 외국의 거대 의료 체인이 들어오면 국내의 의료 문화나 의료시장이 왜곡, 파탄날 수 있어 위험하다.”

-의사윤리지침 내용 가운데 낙태 뇌사 등 일부는 현행 실정법과 명백히 배치되는 것이다.

“언론이 일부 조항만 문제삼는다. 허위 과대광고나 부당진료, 부당이득을 금지하는 등 의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도 많다. 의사 내부용 윤리지침을 그대로 순수하게 봐달라.”

-낙태가 만연하는 현실을 잘 아는 의사들이라면 윤리지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문화된 법을 개정하는 것을 먼저 추진했어야 하지 않았나.

“결혼 후 낙태 경험을 가진 여성이 44%라는 통계가 있을 만큼 낙태가 성행하고 있지만 현행 법 테두리 속에서는 산부인과 의사의 대다수가 ‘범법자’가 돼 있다. 사회적 합의를 얻어 법을 개정하도록 하겠다.”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뇌사 문제도 윤리지침에서는 인정했다.

“고쳐져야 한다. 법은 시대정신이나 시대의 윤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법은 시대와 현실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

-부당청구, 과잉진료 등 부도덕한 행위를 한 의사에 대한 자정 노력은 왜 없는가.

“그런 일은 확실히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무리한 의약분업에 따라 생긴 재정파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부당청구를 문제삼는 측면도 있다. 회원자격 정지 등 징계를 하고 있지만 의협은 의사 면허 취소 권한이 없다보니 징계에 한계가 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징계권한을 넘겨받아야 한다.”

-제약사가 약품채택비, 처방사례비 명목의 돈을 건네거나 의사들의 해외연수비를 대주는 등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과거 제약업계의 지원은 관행이 되다시피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이를 양성화해 기금으로 조성, 학술대회참가비 보조 등 의학발전에 쓰도록 하여 투명성을 높이겠다.”

▼신상진회장은▼

서울 태생으로 용산고와 서울대의대를 나온 신상진 의협 회장은 70년대 치열한 사회참여의식을 가졌던 대학생 다수가 그러했듯 학생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거쳤다. 77년에 대학에 들어가 15년만인 92년에야 졸업, 성남에 의원을 열었다. 이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조직국장을 맡는 등 사회 활동을 이어갔으며 성남YWCA이사, 성남 시민모임공동대표, 성남시민 실업극복을 위한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성남시의사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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