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경남농민회의장 편지전문

  • 입력 2001년 11월 15일 09시 39분


대통령께 드립니다

농사는 만물을 창조하신 신(神)의 도우심과 자연의 조화와 인간의 땀과 정성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삼위일체의 합작품이며, 그 생산물은 인간의 생명을 영위시키는 것이기에 농업을 생명산업이라 하며 농사꾼은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어머니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농업은 자연환경 보존과 자연재해 예방의 반석(盤石)산업 입니다. 지구환경의 위기, 식량의 위기,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21세기의 문턱에 선 지금, 농업의 중요성은 국민 모두가 인식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농촌과 농업, 농민은 정치적으로 외면당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하며 사회적으로 천시당하여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희망으로 씨뿌리고 기쁨으로 가꾸어 보람으로 거두어야하는 농사가 근심 걱정과 한숨으로 얼룩져 있음을 아뢰옵니다. 이 모든 것은 농민들이 지어놓은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생산비에는 못미치지만 쌀만은 정부수매 제도로 최저가격을 보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올들어서는 이 선마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현장의 농민들이 곳곳에서 적재(積載)와 농성으로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일본이 농업예산의 9%, 미국은 20%, 유럽국가연합(EU)은 45% 이상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허용하는 직불제로 농민소득을 보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의 예산으로 쌀 산업을 시장경제에 내던짐으로써 정부수매가와 시장가격의 차이로 발생되는 농민손실이 1조5000억원에 달하고 있사옵니다.

정부에서 나름대로 대책을 내어놓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인 시장가격 지지효과는 나타나지 않고있는 실정입니다. 쌀문제 해결은 70% 이상이 재고미 해결에 달려있으며,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것이 재고미 해결의 열쇠입니다.

300만석 이상의 대북지원이 조속히 이루어지고 정부수매와 농협중앙회 매입분 400만석의 2등급 가격매입과 시장격리 조치를 하면 시장가격 상승은 원만하리라 생각됩니다.

대통령님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 자원인 태양 공기 물 흙과 같은 것은 없어서는 아니될 중요한 것들이기에 독식이나 독점할 수 없도록 조물주께서 풍부히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풍부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자원에 대한 고마움이나 귀중함을 잊어버리고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다. 식량자급이 28%인 나라에서 1년에 9조원의 음식물 쓰레기가 나뒹굴고 보리고개 시절의 생명과도 같았던 먹을 거리들이 천덕꾸리기로 취급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무기를 제패하고 금융을 지배하고 이젠 식량마저 장악하고자 하는 미국의 수입개방 강요의 물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시작한 장면내각을 총칼로 몰아낸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인 1978년 대흥동 성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서의 김대중 대통령의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열정과 분노, 정책적 대안의 연설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셨다면 농업정책의 단추를 다시 끼우시기를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지금 농민들은 수입농산물에 의한 농축산물 가격하락으로 무슨 농사를 지어야 살아갈수 있을까 하는 극심한 불안에 젖어 있으며, 계속되는 적자영농으로 인한 농가부채 문제는 개인적 파산을 넘어 농촌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한 실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추진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WTO각료회의 및 중국의 WTO가입 예정 등의 일정을 바라보고 있는 농민들은 위기감과 분노속에 고뇌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본연의 의무인 유통개혁과 소득보장의 길을 외면하고 아직도 신용사업의 매력에 미련을 못버리고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생산비 절감과 계획생산, 계획출하 등의 생산지도(指導) 효율을 높이며 경제사업의 활성화를 기할수 있는 조직체계와 농민들의 힘을 결집할 수 있는 품목, 축종(畜種), 업종별 연합회 설립의 길은 협동조합 중앙회와 그 기득 세력들에 의해 막히고 있어 농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와 희망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군사독재 시대에서 문민정부로 이어진 지금의 한나라당은 우리 농촌을 망친당 이라 부르며 지금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농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배신당 이라는 평가를 깨어나는 농민들이 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여소야대의 정치여건 속에서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나 위기를 맞이할 때일수록 자기를 죽이면 살 것이요, 자기를 살리려면 죽을 것이라는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야 함을 삼가 올립니다.

지금의 국민들의 심판은 정치적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당도 야당도 지금 현재는 모두가 패배당 임을 알아야 합니다.

10조원의 무기 수입을 강요하고 있는 미국의 압박을 벗어나고 수조원의 분단비용을 생산비용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화해와 평화의 사업이 될 대북쌀지원은 식량자급과 통일농업 실현의 길이며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역사적인 통일 사업임을 확신합니다.

지금 농촌은 농가부채문제, 협동조합 개혁의 과제, 의료보장의 과제와 쌀 생산비 보장의 문제, 자유무역협정 등 농민들을 위기로 몰아 붙이고 있는 파고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도시가 꽃이면 농촌은 뿌리라는 이치를 국민들이 깨닫고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이 위기를 극복할수 있도록 대통령님의 결단과 정책배려를 청하오며 건강하심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2001. 11. 15

전국 농민회 총연맹 경남도연맹 의장 강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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