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도 예금보험공사 피고도 예금보험공사" 재판부 고심

  • 입력 2001년 9월 21일 18시 28분


올 3월부터 시행된 공적자금관리특별법 때문에 거액의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가 같아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생겼다.

그 당사자는 예금보험공사(예보)로, 예보는 지난해 12월 “1430억여원의 채권을 파산채권으로 인정해 달라”며 파산절차가 진행 중인 동화은행의 파산관재인 백모씨 등 2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나 피고 동화은행측은 법정공방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30일 소송 당사자를 예보로 바꾸겠다는 ‘당사자 표시정정서’를 법원에 냈다. 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의 파산관재인으로 예보나 예보직원을 반드시 선임하도록 규정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근거한 것.

동화은행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지법 파산부(변동걸·卞東杰부장판사)는 이에 따라 7월 동화은행의 파산관재인을 예보로 변경했고 예보는 동화은행에 대해 진행 중인 민사소송까지 떠맡게 됐다.

전례없이 소송의 원고아 피고가 같아지자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민사합의12부(정장오·鄭長吾부장판사)는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법적인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다”며 21일로 예정됐던 선고를 연기했다.

재판부는 “양측의 입장이 달라 판단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소송 당사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송각하의 대상이 된다”며 “이 상태로는 판결을 선고할 수 없어 변호사들에게 제3자를 파산관재인으로 추가선임하는 등 문제해결을 위한 법적 근거를 따져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파산부가 올초 이 특별법에 대해 “사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할 당시 이미 한차례 지적한 바 있으나 헌재는 3월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서울지법 파산부 관리하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파산 금융기관 35개사 중 예보나 예보직원이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된 곳은 34개사에 이른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