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 가뭄 '목타는 농촌'…"하늘도 땅도 말랐다"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24분


기상 관측 이후 최악의 가뭄. 하늘도 마르고 땅도 말랐다. 경기 북부지역의 경우 강우량은 예년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올 봄 들어 계속된 가뭄이 3개월을 넘기면서 전국의 들녘이 불타고 있다. ‘마른하늘’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가슴에 피멍이 든다. 당분간 비 소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기상청 예보에 망연자실해 일손을 놓고 있다.

갈가리 찢긴 논바닥. 밭두렁은 차라리 황무지를 연상케 한다. 뿌연 먼지에 휩싸인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퍼석퍼석 무너져 내린다. 하천은 시뻘건 바닥을 드러내며 돌아누웠다.

강 상류의 천수답에서는 아직도 모내기를 하지 못해 농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고추 잎담배 등 밭작물은 잎과 곁가지를 내지 못해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식수난도 심각하다. 농민들은 앞으로 열흘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더 이상 가뭄이 계속되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짓는다. 밭작물은 벌써부터 ‘포기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8일 오후 경기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 야산 아래에 자리잡은 1000여평의 율무밭. 간혹 싹이 올라온 곳도 있지만 그나마 오래 전에 말라버려 발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623㏊를 차지하는 콩밭은 이미 파종시기를 놓쳤지만 땅이 메말라 씨를 뿌릴 염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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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모내기를 하지 못한 곳도 많다. 연천군에서 벼농사를 포기한 논 면적은 무려 121㏊. 파주시도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임진강 물도 갈수록 줄어들어 서해 바닷물이 만조 때마다 내륙 깊숙이 올라와 염해(鹽害)가 발생하고 있다.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일대는 염해가 심각하다.

낮 기온이 34도를 가리켰던 8일 오후 1시경 강원 춘천시 신북읍 지내1리 속칭 지름물마을 앞 들녘. 파종을 마친 고추와 옥수수가 발아가 안돼 비쩍 마른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이제는 지하수도 말라 양수기로 논에 있는 물을 비닐하우스에 퍼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700여평의 비닐하우스에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이 마을 이장 신정현씨(46)의 한탄이다.

유례 없는 가뭄을 이겨내느라 ‘6단 물대기’도 등장했다.

8일 오후 2시경 충북 영동군 용산면 한석리 들녘. 농민들은 삽자루를 놓고 호스를 연결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호스는 3.5㎞나 떨어진 인근 심천면 심천리 초강천까지 뻗어있고, 그 중간 중간 6곳에 양수기 두 대씩이 연결됐다. 이처럼 양수기를 호스에 주렁주렁 매단 것은 원거리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야 하기 때문.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의일리 주민 박상호씨(61)는 “수일 내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고 뭐고 모두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씨는 “8000여평의 농토에 올 초 정성 들여 심은 고추와 잎담배의 생육이 정지된 상태”라며 “조로현상까지 보이며 바싹 바싹 말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두 달째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의성, 청송, 영양, 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도 마찬가지. 특히 안동댐 상류에 위치한 안동 북부와 봉화, 청송 등 고지대 논밭은 소하천과 소규모 저수지가 모두 말라붙은 상태다.

전남 담양군 대전면 김영중씨(72)는 “마늘 양파 대신에 딸기와 고추 수박을 심었는데 가뭄 때문에 다 죽게 됐다”며 “천수답이 많은 이곳에서 한해(旱害)는 업보처럼 매년 되풀이돼왔지만 올해는 두 달 동안 비 구경을 못했다”고 울상 지었다.

한편 농림부가 가뭄피해실태를 집계한 결과 90년 기상청 관측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농업용수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모내기를 제때 못하거나 밭작물이 말라죽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농림부는 밭작물 파종 한계시기가 옥수수는 15일, 참깨는 25일, 고구마와 콩은 7월5일이어서 이달 말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올해 농사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8일 밝혔다.

3월 이후 강수량은 예년(291㎜)의 30%에도 못미치는 90㎜선.

저수율이 30% 미만인 저수지 수도 이달 들어 3일 753개에서 7일 1240개소로 급증하고 있다. 전국 1만8000개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은 평년보다 17%포인트 낮은 56%에 그치고 있다.

농림부는 “농업용수 부족으로 전국 8173㏊의 논이 모내기 시기를 놓쳤다”면서 “비닐피복을 입혀 재배하는 고추 봄배추 등도 생육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7932㏊의 밭에서는 콩 참깨 등 파종작물이 싹이 트지 않고 입이 말라죽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콩 팥 고구마 옥수수 등 밭작물을 제때 파종하지 못한 지역도 3만5366㏊에 이르고 있다.

<춘천·대구·청주·의정부〓최창순·정용균·지명훈·이동영기자>cs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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