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학생 일본을 울리다…일본인 구하려다 숨져

  • 입력 2001년 1월 28일 00시 03분


일본에 유학온 한국 대학생이 도쿄(東京) 전철역 구내에서 술 취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비극의 주인공은 이수현(李秀賢·27·고려대 무역학과 4년 휴학중)씨. 이씨는 26일 밤 도쿄 국철인 JR 야마노테센(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술에 취한 승객이 플랫폼에서 미끄러져 철로에 떨어지자 구하려고 철로로 뛰어내렸다가 때마침 역구내로 들어오던 전동차를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이날 사고로 처음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비롯해 이씨와 함께 취객을 구하려던 일본인 등 모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술 취한 승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며 이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크게 보도했다.

이씨는 이날 신오쿠보역 근처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전철역에서 사고를 당하기 5분 전 휴대전화로 여자친구에게 “이제 전철에 탄다. 30분 후면 집에 도착한다”고 전했는데 이것이 세상에 남긴 그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이씨는 부산 출신으로 고려대를 휴학하고 99년 11월 일본에 와 지난해 1월 도쿄에 있는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에 입학했다. 일본어 학교에서 최상위 성적을 기록한 그는 올 여름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고려대에 복학할 예정이었다. 이씨는 평소 정의감이 강하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동료 유학생들은 전했다. 그는 지난해 일본어학교에 제출한 입학 이유서에서 “일본 유학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한국이나 일본의 무역회사에 입사해 두 나라의 교역 부문에서 확실한 1인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여동생 "가난한 사람보면 옷 벗어줘"

한편 부산 연제구 연산9동 D아파트 이씨의 집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아버지 이성대씨(63)와 어머니 신윤찬씨(53)가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일본어학기관으로 확인 전화를 한 뒤 27일 오후 3시반 비행기편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여동생 이수진씨(25·회사원)는 “오빠는 중학교 때부터 가난한 사람을 보면 옷을 벗어줘 부모님께 야단을 맞곤 했다”며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을 구하려다 숨진 오빠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의 홈페이지(http://blue.nownuri.net/∼gibson71)를 만들어 ‘수현이의 전국일주여행’을 실을 정도로 산악자전거와 기타 스킨스쿠버 등을 즐기던 활발한 젊은이였다. 그는 홈페이지의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서 “최대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 살아가면서 뜻대로 안될 때도 있고 힘든 날도 있겠지만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백경학기자·도쿄〓이영이특파원>stern10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