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그 아름다운 삶]'사랑의 먹거리 서울남부 운동본부'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전원구(田元九·50·서울 은평구 진관외동)씨의 일과는 보통 오전 6시에 시작된다. 집을 나선 전씨가 1t트럭을 몰고 맨 처음 들르는 곳은 서울 도봉구 창동에 있는 농협 하나로 물류센터. 먹을 수는 있지만 상품으로 팔기는 어려운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다.

채소와 과일을 트럭에 실은 전씨의 다음 목적지는 관악구 지역의 빵집들. 신림3동의 ‘킴스베이커리’ 주인 김은숙(金銀淑·38)씨가 반갑게 맞으며 커다란 비닐봉지에 전날 구운 빵을 한가득 담아준다.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서울남부지역 운동본부’(서울 관악구 신림1동·02-830-8586). 먹을 수 있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버려지는 각종 음식을 가져다 결식 아동과 불우한 노인들에게 나눠주는 푸드 뱅크(Food Bank)다. 전씨는 이곳의 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다.

“멀쩡한 음식이 우리나라에서만 1년에 8조원어치 가량이나 폐기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쪽에서는 많은 어린이와 노인들이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있지요.”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푸드 뱅크 사업이 우리나라에 본격 도입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로 결손 가정이 크게 늘어났던 98년5월. 대한성공회에서 서울을 남부 북부 영등포 성동 등 4개 지역으로 나누어 1t 냉동트럭 4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부스러기선교회 조계종 YMCA YWCA 기독교장로회 등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단체들이 모여 협의회를 구성했다. 이 협의회가 도움을 주는 불우이웃은 전국에 4만명 가량 된다.

전씨는 청소용역업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남부지역 운동본부에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전씨와 4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부양하는 식구들은 관악구 지역에 모두 1000여명.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회원들은 빵집과 식당, 슈퍼마켓 등 40∼50군데에 달한다. 난우초등학교 등 인근 4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급식하고 남은 음식도 큰 보탬이 된다.

운동본부측은 이들에게 육류 등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 그래서 1주일에 두 번씩 쇠고기를 나눠주는 신림정의 김창호(金昌鎬·47)사장은 특히 고마운 후원자다.

김사장은 “생고기 전문점이라 하루만 지나도 고기를 팔지 못해 이를 나눠주고 있을 뿐”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김사장이 사실은 질 좋은 쇠고기를 내놓는다는 것을 운동본부 식구들은 다 안다.

먹거리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움을 받는 이들이 상처를 입지 않게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음식을 나눠줄 때 내성적인 아이들이 선뜻 받지 못하고 뒷전을 맴도는 것을 보면 운동본부 식구들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프다.

“얼마 전 결식아동에게 자장면 티켓을 주고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겁니다.”

그래서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시락을 만들어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직접 배달도 해준다.

“먹거리 나누기는 단순히 남는 음식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미덕을 실천하는 사업입니다. 옛날부터 우리는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에게 먹을 것을 아껴 나눠주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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