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만원권 舊券'사기…입금 2천만원 찾아 줄행랑

  • 입력 2000년 3월 31일 20시 52분


장영자씨가 관련됐던 최근의 사기사건과 똑같은 수법의 1만원권 구권(舊券)교환사기가 잇따르고 있다.

사채 관련업을 하는 O씨는 지난달 말 사무실을 찾아 온 한 남자로부터 “1만원권 신권(新券) 24억원을 주면 구권 30억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구권을 먼저 보여달라는 O씨에게 이 남자는 “일단 신권 2000만원과 구권 4000만원을 교환하자”고 제의해 O씨는 다음날 문제의 남자가 알려준 은행계좌로 2000만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문제의 남자는 은행에서 2000만원을 찾아간 뒤 O씨와의 연락을 끊었고 한달여 동안 연락을 기다리던 O씨는 결국 지난달 30일 경찰에 신고했다.

사채 관련업을 하는 K씨도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각각 다른 남자들로부터 구권을 신권으로 바꿔달라는 문의를 14차례나 받았다. 교환 수수료로 10%를 주겠다는 말에 K씨는 13차례나 수억원짜리 수표를 들고 약속장소에 나갔으나 거래는 한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의뢰자들이 번번이 구권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K씨는 “구권을 교환하자는 문의자들과 만나기 위해 서울은 물론 광주 대구 제주까지 내려갔으나 문의자들마다 ‘구권은 나중에 보내줄테니 수표를 먼저 달라’고 말해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며 “문의자 중에는 전직 은행지점장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K씨는 “명동과 강남 사채시장뿐만 아니라 지방의 사채시장에서도 구권교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며 “특히 최근엔 구여권 실세의 비자금이라며 1만원권 신권을 수표와 교환하는 대가로 구권교환 수수료의 절반인 5%를 주겠다는 제의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 문제없이 통용될 수 있는 1만원권 신권을 교환하려는 시도는 뭉칫돈의 일련번호가 추적될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O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날 구권교환 사기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사채시장 주변에 구권교환에 관련된 브로커들이 수만명에 이른다는 첩보를 갖고 있다”며 “대부분은 사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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