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쓰다만 자서전 뭘 노렸나?

  • 입력 1999년 11월 1일 19시 07분


“6·25 동란은 내가 대전 D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때에 일어났다.”

검찰이 1일 공개한 이근안(李根安)전경감의 ‘자서전’ 첫 머리는 ‘1. 소년기의 6.25 동란’이라는 소제목 하에 축구 연습을 하다가 듣게 된 사이렌 소리, 그리고 선생님의 일그러진 얼굴 등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

“새벽에 밥을 지어먹고 출발했다. 우리가 떠난 후 (인민군이) 새벽같이 들이닥쳐 집과 이웃을 뒤지고…. 집에 돌아왔을 때 ‘메리’도 기다렸던지 가슴을 파고들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전경감은 용두동 집에 숨어 지냈다는 96년경 ‘대공수사 경험담을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 자서전을 구상했다고 검찰에서 밝혔으나 검찰은 반공(反共)이데올로기 속에서 자신의 행위가 불가피했음을 내세우기 위한 ‘계산된 자서전’으로 분석.

그러나 검찰이 압수한 자서전은 유년시절을 담은 원고지 90장뿐.

검찰 관계자는 “완성된 자서전이 있다면 고문 배후 등을 밝힐 결정적인 단서가 되겠지만 이씨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가 진행된 88년 12월부터 90년 7월까지 이씨의 도피 행적을 3단계로 구분해 설명했다.

첫 단계는 88년 12월부터 두달간. 이씨의 잠적 사실이 알려지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이씨는 부인이 준 300만원 가량의 여비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부산이나 영주 등을 돌아다니며 잠은 여인숙에서 잤다.

두번째 단계는 89년 1월부터 1년간. 여행에 지친 그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잠입’했다. 부인이 주는 30만∼60만원의 경비로 1주일 동안 여행을 하다가 집에 들어와 3,4일 머무는 방식이었다. 아파트를 드나들 때는 경비원과 경찰, 기자의 눈을 피해 밤과 새벽 시간을 이용했다.

세번째 단계는 사회의 관심이 사그라지자 이씨가 90년 1월부터 외부에 나가지 않고 아파트에서 ‘장기전’을 시작한 시점부터 자수하기까지. 검찰은 “용두동 집으로 이사를 한 90년 7월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확인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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