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魔피해 한달째]'복구비 쥐꼬리' 수재민 두번운다

  • 입력 1999년 8월 31일 19시 43분


8월초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경기북부 일대에는 한달째 ‘수마(水魔)’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다. ‘쥐꼬리만한 복구비’로는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은 주민들의 탄식과 한숨이 그치지 않고 있다.

▼문산 80여명 대피생활▼

◇문산

이번 수해로 읍내 전체가 물바다가 됐던 경기 파주시 문산읍. 침수피해를 본 집은 2000여가구에 이르지만 물이 빠진 뒤 한달이 다 되도록 벽이 마르지 않아 아직 도배조차 하지 못한 집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산초등학교 내 체육관에서 대피소 생활을 하는 주민도 80여명에 이른다.

문산읍내에서도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문산4리. 아직까지 곳곳에 지붕이 날아가고 담이 무너진 집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가구당 60여만원씩 지급되는 ‘쥐꼬리만한 복구비’로는 도저히 복구작업을 감당할 수 없는 주민들이 또다시 빚을 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추석이 눈앞인데" 탄식▼

3년전 수해때 빚을 내서 집을 수리했다는 문산4리 주민 김이봉씨(59)는 “이번에도 지붕과 문짝 등이 물에 쓸려 모두 날아갔다. 이를 다 복구하는데 2000만원 이상 들 것”이라며 “정부의 복구비 60만원으로는 일당 10만원이나 하는 목수 품값도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특히 “추석이 얼마 안 남았는데 지붕도 날아간 집에서 어떻게 차례를 지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하소연했다.

읍내 상가의 사정도 전혀 나을 게 없었다. 많은 상점들이 셔터를 굳게 내린 상태였고 장사를 다시 시작한 곳은 30%도 되지 않았다.

특히 96년 수해 때 대출받은 융자금조차 못갚고 있는 상인들은 정부가 상가를 보상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문산읍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종복씨(41)는 “96년 수해때 받은 융자금 4500만원을 절반도 갚지 못했는데 시에서는 상인들에게 무조건 대출받으라고만 한다”면서 “융자도 보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무슨 수로 대출을 받느냐”라고 말했다.

31일 오후2시 문산읍 공설운동장에는 주민들이 복구작업과 생업를 뒤로 한 채 줄지어 몰려들어 궐기대회를 가졌다. 수해가 발생하고 한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개최된 집회였지만 1500여명의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늦여름의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해발생 한달이 넘도록 피해복구와 보상에 나몰라라 하는 정부에 대해 ‘비현실적인 재해보상 수재민은 두번 운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후 늦게까지 분노를 쏟아냈다.

▼보상비 쌀 두가마니 분량▼

◇연천

나흘간 900㎜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던 경기 연천군 일대도 여전히 ‘쑥대밭’이었다.

채 마르지 않은 집들의 벽지마다 파랗게 곰팡이가 피었고 침수됐던 다리와 전선에는 쓰레기 등이 잔뜩 걸린 채 방치되어 있었으며 주인잃은 축사들도 반쯤 무너진 채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한탄강 국민관광지의 식당 20여채 가운데 영업중인 집은 단 한집에 불과할 정도로 복구작업은 지지부진했다. 농경지의 60% 가량인 279㏊가 완전히 침수된 연천군 장남면 곳곳에는 누렇게 죽은 벼가 바싹 말라 쓰러져있고 몇몇 주민들은 대체 작물을 심기 위해 논을 경운기로 갈아엎고 있었다.

장남면 원당2리 조윤제이장(41)은 “논 6000평 이상이 망가졌는데 지금까지 받은 보상은 쌀 두가마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연천댐 붕괴로 피해를 본 군남면 진상리, 청산면 장탄리, 한탄강국민관광지 등 주민 400여명은 ‘연천군 수해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댐 시공사인 현대건설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동두천에서도 주민들의 불만은 높았다. 중앙동 현대슈퍼 윤교주씨(72)는 “상가는 침수가 돼도 보상금이 안나온다”며 “주변 상인들 사이에 불만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헌진·박윤철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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