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赤 대북지원 논란]일방지원는 상호주의 훼손우려

  • 입력 1999년 3월 11일 19시 02분


대한적십자사가 11일 밝힌 대북(對北) 비료지원 모금계획은 북한의 농업개발을 돕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북한이 당국간 회담을 거부하는 현실을 절충한 일종의 ‘묘수’라고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한적의 모금활동 동참 요청에 정부가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양측의 교감 하에 이번 지원이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한적을 통해 직접 대북 비료지원에 나서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선(先)비료지원 방침이 사실상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문제는 이같은 지원이 ‘상호주의’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베이징(北京)차관급 남북비료회담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제기하며 “정부가 나서는 대규모 지원에는 상호주의를 적용하되 인도적 지원은 별도로 할 수 있다”는 선으로 입장을 정리했었다.

따라서 비료지원이 북한의 식량난 극복을 농업구조개선차원에서 돕는 인도적 지원이라고 주장한다면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지원 규모가 크다면 아무리 인도주의를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비료지원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일단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북한은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50만t 정도의 비료지원을 희망해 왔다. 그렇지만 북한이 파종기 전에 5만t 정도의 비료를 받고도 이산가족문제 등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엔 비료지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북 비료지원은 최근의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가 상당부분을 감당해야 할 형편이다. 비료 5만t을 지원하기 위해선 약 1백50억원 정도가 소요되나 한적이 95년11월부터 올 1월까지 3년2개월간 모금한 성금이 4백81억원에 불과했던 것은 이같은 사정을 말해준다.

물론 현재로선 북한이 이번 조치에 어떻게 나올 것인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가 베풀면 북한도 부드럽게 나올 것이라는 단순한 낙관론에 근거해 서둘러 비료만 주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개선시키지 못하는 역효과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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