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증후군]「남은者 고통」 病될수 있다

  • 입력 1998년 12월 25일 20시 00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아십니까.

IMF 관리 체제이후 대량 정리해고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샐러리맨 상당수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정신질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빅딜논의와 함께 대량감원이 불가피해진 일부 직장의 임직원들 사이에도 이러한 ‘구조조정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구조조정 증후군은 잘리지 않고 ‘살아남은’ 직장인들이 겪는 정신적 혼돈과 피폐현상을 일컫는 용어. 일종의 집단 신경정신병 증세를 말한다.

이는 대체로 3단계로 나타난다.

1단계인 ‘정신적 혼돈기’는 쉽게 피로해지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며 특히 성욕이 감퇴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 올해로 직장생활 8년째인 대기업 H사의 기획팀 강모과장(36)의 경우 하루에도 몇번씩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2단계는 ‘정신적 억압기’로서 상사의 지시에 순응하며 휴가를 반납하거나 야근을 자청하는 등 일에 몰두함으로써 심리적 갈등을 억압하고 적응하려는 단계. 2개월전 전직원 중 30%가 퇴출당한 S사 인사팀의 강모차장(43)은 최근 2종의 영자주간지 구독신청을 하고 야근을 자청하고 휴일에도 출근할 정도로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그는 일에 매달릴수록 깊어만 가는 허탈감과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 고민하다 병원을 찾아가 증세를 확인했다.

3단계인 ‘정신적 황폐화기’로 접어들면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 증가하면서 ‘실직공포’도 사라지며 매사에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신경정신과 의원 ‘마음과 마음’의 정혜신(鄭惠信)원장은 10월부터 보름간 구조조정을 마쳤거나 진행 중인 5개 대기업 사무직노동자 3백8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이 이같은 구조조정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정원장은 “30,40대 회사원들을 중심으로 상담신청이 한달에 1백여건이상 들어와 지난해에 비해 2배이상 급증했다”며 “회사나 사회가 직장인들이 안고 있는 이같은 증세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다함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구조조정 증후군 예방책]

구조조정증후군은 개인의 정신적 결함때문이 아니라 예측불가능한 사회상황에 직면한 다수의 직장인이 겪는 집단적인 심리적 병리현상이다. 그래서과로와 과음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뿐이다.

개인과 회사가 노력해야 할 예방책을 소개한다.

▼ 개인 ▼

①자기 모멸감이나 자책감을 갖는 것은 금물.

②동료나 가족에게 고민을 터놓고 얘기하라.

③휴식과 심리적 안정이 필수. 긴장 불안을 해소하라.

▼ 회사 ▼

①사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회사입장만 강조하지 말라.

②사내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라.

③가급적 과도한 업무지시는 피해야 한다.

④명확한 원칙아래 예측가능한 구조조정으로 스트레스를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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