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방북기②]『민족의 聖山서 통일의 길 열자』

  • 입력 1998년 9월 8일 19시 45분


天地 지키는 '곰바위'
天地 지키는 '곰바위'
1998년 8월31일 새벽.

첫햇살이 퍼지는 이 백두산 천지 앞에, 보라, 바야흐로 반세기의 질곡이었던 분단을 걷어내고 통일의 새 길을 여는 새벽이 밝는다.

백두산의 또다른 이름은 ‘가이민 상견아린(높고 흰 산이라는 뜻의 만저우어)’. 첫탐사는 1438년 외국인에 의해 이루어졌고 백두산 대폭발은 놀랍게도 불과 1천여년 전, 고려조 중기때였다고 한다.

이때의 화산재는 멀리 일본 홋카이도(北海道)까지 가 닿았다던가. 그리고 발해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도 이 백두산 대폭발과 상관이 있었던 게 아닐까.

바로 이 때에 오늘 우리가 보는 백두산의 몸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뒤에도 작은 폭발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조선왕조실록에도 네 차례의 화산폭발이 기록돼 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 김정호도 세 차례나 이 산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나저나 천지의 신비는 천만마디 말이 필요없이 우리로 하여금 새삼스레 숙연하게 한다.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도 요즘 우리 주위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거니와 바로 이 백두산을 기점으로 산은 산대로 강은 강대로 이 나라 삼천리 강산의 골간과 흐름과 구석구석의 음영을 이루어 왔음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백두산과 천지를 기점으로 한 골간과 흐름과 음영을 본래의 모습대로 잇고 복원시키는 일이야말로 바로 통일이 아니겠는가.

천지의 총 둘레는 14.4㎞, 동서로 4.6㎞, 남북으로 3.5㎞에 총 담수량은 19억5천5백만㎥. 가장 깊은 수심은 물경 3백84m, 최저온도는 섭씨 영하 47.5도에 연 평균 기온은 섭씨 8.1도.

비 또는 눈이 내리는 날은 연중 1백40일. 연평균 강수량은 2천5백1㎜다. 하도 비가 자주 내린다 해서 이곳 사람들은 “한달에 40일은 비가 온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최고 풍속은 초속 78.6m여서 이 바람을 따라 별안간 폭포가 거꾸로 곤두서는 ‘꺼꿀폭포’와 천지 한가운데의 물기둥이 돌개바람을 따라 50∼60m 높이로 왈칵 솟아오르는 ‘용권(龍淃)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오직 백두산 천지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장관이다. 그렇게 솟아오르는 물기둥에 오색영롱한 햇살이 닿을라치면 과연 어떠하겠는가. 그걸 한번 상상해 보라.

우리의 ‘해동수경’에는 ‘모든 산이 여기서 시작됐다’며 백두산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산의 조종(祖宗)이라고 적혀 있다. 본시 백두산 천지에는 물고기가 못 살았으나 1984년에 산천어 1백마리를 넣어 번식시켜 이제는 70㎝의 대어(大魚)도 잡힌다. 백두산 정상과 천지 사이의 표고차는 5백m, 이곳 가파른 1.8㎞의 거리에 오스트리아제 케이블카가 95년 건설됐다.

자 보라, 바로 이 민족의 시원인 백두산 천지에 첫햇살이 퍼지는 새벽.

지난 50년동안 켜켜이 쌓였던 분단의 묵은 곰팡이를 걷어내며 남북의 새 기틀을 향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바로 이 때에 맞춰 이렇게 섰다.

이호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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