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石씨 폭행치사 수사]「한총련지도부 개입」에 초점

  • 입력 1997년 6월 7일 08시 09분


李石(이석·23)씨 상해치사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총련 지도부가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씨 사망사건에 대해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머리숙여 사과한 한총련의 기자회견 자체가 사건을 은폐하려는 고도의 전술이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한총련 지도부는 이씨가 사망한 4일 오후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체 조사결과 이씨를 폭행한 학생은 2명뿐이며 지도부는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5일 오후 경찰에 자진출두한 權純郁(권순욱·24·건국대 농화학2년)씨 등 용의자 2명은 『지난 3일 밤11시경 학생회관내 교지 자료실에 들어갔을 때 마스크를 쓴 간부 1명이 이씨를 조사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폭행을 주도한 다른 남학생 두명과 함께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된 吉素延(길소연·24·한양대교육학과졸)씨도 최초 조사과정에서 『3일 오후5시반경 마스크를 쓴 한총련 간부와 함께 이씨를 조사하면서 진압봉으로 이씨를 폭행했다』고 인정했다. 길씨는 또 『조사도중 이씨가 목을 조르려고 하는 등 반항해 이씨를 서총련 투쟁국장 주길남(가명)에게 인계했으며 한양대 총학생회 간부인 윤모씨에게서 「이씨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진술, 이씨 조사 사실을 몰랐다는 한총련 지도부의 주장을 뒤엎었다. 한총련 지도부는 또 의장인 姜渭遠(강위원·전남대 총학생회장)씨가 4일 밤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나 자신도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등 경찰의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 당초 약속과는 달리 한총련의 비협조로 경찰의 현장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폭행에 사용한 경찰진압봉과 이씨의 핏자국이 묻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바지와 남방셔츠 등 결정적인 증거물들을 사건현장에서 모두 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찰은 자수한 학생들의 진술에만 의존, 한총련 지도부와 사건발생 당시 학생회관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소환해 당시의 행적을 밝히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앞뒤가 맞지 않는」한총련의 주장이 폭행학생의 수를 최대한 줄이고 한총련내에서 의장 못지않게 주요한 간부인 투쟁국장이 이씨 폭행에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한 「기만술책」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총련의 관례상 투쟁국장은 대학을 졸업했거나 휴학중인 고참학번 학생이 맡아왔고 신분노출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쓰고 있다. 〈이철용·박정훈·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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