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사망 10년 민주화10년]『종철아 할말 없데이』

  • 입력 1997년 3월 31일 19시 48분


『우리 종철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 하는데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고 朴鍾哲(박종철)군의 아버지 朴正基(박정기·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상임대표)씨는 지난 87년 1월14일 당시 서울대에 재학중이던 아들이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끝에 숨진지 10년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한보사태 등으로 혼란스러운 나라사정을 걱정했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 당시 박씨가 아들의 뼛가루를 진눈깨비 흩날리는 임진강에 뿌리며 한 이 말은 지금도 한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박군의 죽음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는 4.13 호헌(護憲)조치를 촉매로 들불처럼 타올랐다. 군부정권에 대한 민초들의 걷잡을 수 없는 저항으로 결국 박군의 죽음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또한 5공 정권의 붕괴와 6.29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 민주화의 시발점이 됐다. 현재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는 서울대총학생회와 함께 오는 6월10일 서울대에 박군 추모비를 세울 계획이다. 추모비 건립비용은 기념사업회가 모금한 1천5백만원과 서울대생들이 쾌척한 1백50만원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화가 홍성담씨가 박군의 흉상을 중심으로 2개의 상징조형물을 배치하는 형태의 추모비를 디자인하고 있다. 기념사업회와 서울대 총학생회측은 앞으로 「박종철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아버지 박씨의 살아온 얘기도 책으로 묶어낼 계획이다. 오는 11월 박씨의 칠순을 기념해 출간될 이 책에는 박씨가 아들의 죽음 이후 재야운동에 뛰어든 과정 등이 소개된다. 박군의 어머니 鄭且順(정차순·66)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지 10년째를 맞은 올해초부터 3개월째 계속 병석에 누워 있다. 기념사업회 金燦熏(김찬훈·33)사무국장은 『종철이가 죽은지 10년이 지났지만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한보사태로 사회는 어지럽기만 하다. 과연 역사의 시계바늘이 바로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박군고문치사사건과 관련해 박군의 물고문 사망(87년)과 경찰간부들의 고문가담자 축소은폐(88년), 경찰수뇌부의 축소은폐조작(89년)을 잇따라 특종보도함으로써 단일 사건으로 연속 3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편 박군의 생일은 동아일보의 창립기념일과 같은 양력 4월1일. 기념사업회는 박군의 서른세번째 생일인 1일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었으나 서울대 출신 「열사」들의 합동추모비 건립계획 때문에 무산됐다. 〈최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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