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들의 기막힌 세밑]천막서 추위에 『덜덜』

  • 입력 1996년 12월 22일 20시 20분


『춥지만 어떻게 해. 당장 살 곳이 없는데 이런 철판상자속에서라도 살아야지…』 22일 오전 경기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 찬바람이 쌩쌩 부는 노천의 컨테이너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는 崔得禮(최득례·70·여)씨가 한숨을 지었다. 지난 7월말 대홍수로 순식간에 집과 농경지를 잃어버린 경기 파주시 문산과 연천군, 강원 철원 화천군에는 수해 5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수마의 악몽이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수재민들은 컨테이너와 천막 마을회관 등에서 추위에 떨고 있고 자갈밭으로 변한 농경지와 끊어진 다리도 그대로다. 특용작물을 재배하던 밭 4만여평이 완전히 자갈밭으로 변해 일부를 복구해 배추를 심었던 이득주씨(60·연천읍 와초리)는 『들판에서 썩어가는 배추를 갈아엎을 힘도 없다』며 『내년 농사는 아예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한숨지었다. 파주시 문산지역 임진강 어부들도 고기잡이 배를 잃어버려 아예 일손을 놓고 있다. 수해때 잃은 어선은 모두 45척. 이중 17척만 다시 찾아 수리를 했다. 이때문에 올해는 대부분 조업을 포기, 소득이 없다. 어민협의회 黃仁亨(황인형·36)총무는 『지난 6월 한탄강 독성폐수방류로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7월에는 수해가 닥쳐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았지만 유실어망 등에 대한 지원이 피해액의 10∼20%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수해를 입은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 전구 생산업체로 전자시스템이 물에 잠겨 15억여원의 피해를 본 파주시 광원기업 삼진기업 등 10여개 업체는 담보가 없어 수해기업지원자금 한푼 못써보고 끝내 도산했다. 주민과 군인 등 모두 54명이 숨진 강원 철원 화천지역의 경우 30여개의 끊어진 다리중 하나도 완전 복구된 것이 없는 상태. 포천 이동과 철원을 연결하는 47번 국도상의 관술교는 흉한 모습을 5개월째 드러내고 있다. 주택도 복구대상 5백64채 가운데 현재 완공된 곳은 1백13채 뿐이고 4백51채는 공사중이거나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남대천의 범람으로 20채의 집이 연못으로 변해 버려 임시로 17개의 컨테이너에서 피난민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김화읍 청양3리 주민들은 컨테이너에다 비닐하우스용 보온덮개를 둘러쳐 차가운 외풍을 막고 있다. 주민 趙福順(조복순·75·여)씨는 『주방과 안방의 구분이 없고 환풍이 안돼 역겨운 음식냄새가 진동하는 추운 컨테이너에서 내년까지 살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파주·연천·철원〓權二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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