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단숨에 기질로 유훈 계승” 선군정치-강성대국 강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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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노동신문 1면 전면 사설

‘김정은 시대’ 공식 선언

젊은 시절의 김정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2일 1968∼197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모습 등 젊은 시절의 활동 사진을 공개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연합뉴스
젊은 시절의 김정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2일 1968∼197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모습 등 젊은 시절의 활동 사진을 공개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연합뉴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며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인 김정은 동지가 서 있다.”

북한이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언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2일 1면 전면에 걸쳐 실은 사설을 통해 김정은 시대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선군(先軍)정치·강성대국 건설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잇는 ‘유훈통치’를 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무엇보다 ‘체제 안정’을 이루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 김정일 우상화와 세습 정통성 강조


사설의 대부분은 김 위원장에 대한 추모로 채워져 있다. ‘21세기의 태양’ ‘사회주의 위업의 수호자’ ‘천출(天出)장군’ ‘영웅’ ‘희세의 정치원로’ 등 온갖 수사를 동원했다. 아울러 ‘김일성조선’ ‘김일성민족’ 등 김일성 주석을 상기하는 표현도 다수 등장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각인하려는 것은 ‘세습의 정당성’으로 분석된다. 사설은 “김정일 동지의 가장 고귀한 업적은 주체혁명 위업, 선군혁명 위업의 대(代)를 굳건히 이어놓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백두의 천출위인들은 넋과 인격, 영도 풍모를 그대로 닮은 또 한 분의 걸출한 영도자(김정은)를 모심으로써 수령복, 장군복을 대를 이어 누리게 됐다”고 밝혔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동격화한 것이다.
▼ ‘선군’ 용어 21차례 등장… 軍 중심 김정은체제 안정 의도 ▼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 위원장의 업적을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이라며 “아직 취약한 김정은 체제가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또 “김정은 동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돼야 한다”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김 위원장을 지키는 총폭탄’이 될 것을 요구해온 것을 감안하면 김정일과 김정은을 동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당장 북한은 체제 안정 외에 대안이 없는 상태”라며 “변화를 시사하면 곧바로 주민 동요로 이어질 상황에서 ‘김정은 옹위’를 주장하는 노동신문 사설이 필요했다”고 진단했다.

○ 유훈통치의 핵심 개념은 선군정치


이 사설에는 ‘선군’이라는 용어가 무려 21차례나 등장한다. 특히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 인민과 군대는 김정은 동지의 선군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나갈 불타는 결의에 넘쳐 있다”고 밝혀 김정은이 선군정치를 계승할 것임을 기정사실화했다.

선군정치는 김 위원장 통치방식의 핵심으로 군을 최우선에 둔다는 것이다. 선군을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의 유훈을 그대로 받들고 동시에 군을 중시해 체제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도가 함께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혁명선배를 존대한다”는 구절도 눈에 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는 “군 중심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군의 원로들과 화합을 중시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인민군에 ‘단숨에 기질’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김 위원장이 내세웠던 ‘속도전’보다 빠른 ‘단숨에’를 내세워 업적 쌓기에 나설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 강성대국과 대남정책도 이어받을 듯


김 위원장의 숙원이던 ‘강성대국’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설은 “위대한 장군님의 강성국가 건설 염원을 끝까지 실현하는 여기에 우리의 숭고한 도덕 의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김 주석 100회 생일인 내년 4월 15일까지 권력 승계를 마무리하고 강성대국을 선포한 뒤 김정은의 통치 기반을 위해 헌법을 개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지만 ‘역사적인 6·15 통일시대’ ‘북남 공동선언 철저 이행’ 등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을 강조했다. 또 “(김 위원장이) 강위력한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킨 것은 만대에 불멸할 업적”이라고 밝혀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노동신문 전면 사설은 ▼

국가 중대발표-비전제시 등 특별한 경우에만 게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노동신문이 22일자 1면 전체를 통틀어 게재한 장문의 사설은 형식이나 분량 면에서 이례적이다. 북한은 국가의 중대발표나 정책, 비전제시 등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만 1면에 이런 식의 사설을 써 왔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에도 노동신문 1면 사설을 통해 장문의 추도사를 실었다. 지도자의 업적을 장황하게 나열한 뒤 후계자의 ‘선군영도’를 강조하며 주민들의 단결을 촉구했다. 이번에도 당시의 형식 및 논리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지도자가 사망하고 3대 후계세습이 이뤄지는 때인 만큼 특별방송에 이어 대표적인 기관지인 노동신문 1면 사설 등을 통해 당국의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추모기간 동안 각 조직 단위별로 모여 이 사설의 구체적인 뜻과 실행방안을 매일 학습할 것으로 보인다. 업무 속도를 몰아친다는 뜻의 ‘단숨에 기질’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 ‘김정은 동지의 영도를 중심으로 전투력을 강화’할 세부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토론도 벌이게 된다.

한 대북 소식통은 “노동신문 1면 사설은 원래 북한 주민들을 교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싣는다”며 “주민들은 보통 때에도 거의 매일 아침 직장에서 신문 사설에 나온 내용을 학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습은 노동당 중앙당에서 1면 사설을 △서론 △발자취 △업적 △과업 등의 분야별로 나눠 배포한 자료에 기초해 필기와 암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내용을 잘 암기하고 있는지를 보는 문답식 학습경연도 한다. 이 소식통은 “잘 외우지 못한 사람은 사상성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해 대중 앞에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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