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비공개 최고위 열어
“함세웅 등 원로들 추천” 내정
지도부 일부 “독단적 리더십” 불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의 당 혁신위원장 내정 사실을 발표 하루 전날인 4일 저녁에야 박광온 원내대표와 최고위원들에게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위원장은 5일 오전 임명되자마자 과거 ‘천안함 자폭’ 등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9시간 만에 자진 사퇴했다. 원내지도부와 최고위 내에선 “이 대표가 전권을 쥐고 깜깜이 밀실 형태로 당을 운영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6일 복수의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일요일이던 4일 오후 6시 비공개 최고위를 열고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시민사회 원로들의 추천이 있었다”며 이 이사장을 직접 단수 추천했다. 함 신부는 2019년 이 이사장과 함께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추진했던 야권 원로 인사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는 이 이사장을 추천받은 뒤 2번 정도 직접 만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이사장의 임명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당 지도부 내에서는 “이 대표가 독단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는 불만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한 지도부 소속 의원은 “후보를 3배수로 추천해 선택권을 주든지, 본인이 직접 단수로 추천하려면 사전에 철저한 검증을 했어야 했다”며 “당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도 “혁신위원장이란 중요한 자리에 대한 실무 검증이 전혀 안 됐다. 논의 과정에서 (논란을) 충분히 걸러내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혁신위 출범 전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5선 이상민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공론화 작업도 없고 검증도 제대로 안 된 이번 사태가 이재명 대표 체제의 본질적인 결함”이라며 “이 대표가 하루라도 빨리 사퇴하고, 원내대표가 (당 대표를) 대행하면서 다른 인물을 찾아 혁신위를 꾸려야 한다”라고 했다.
野원내지도부도 “이래경이 누구냐”… 이재명 ‘밀실 인선’에 반발
사전 인사정보 없이 최고위 소집 이래경 ‘천안함 자폭’ 발언 등 못살펴 당내 “이재명 혼자 인재풀 돌리나” 이상민 “대표 사퇴뒤 혁신위 꾸려야”
“이재명 대표가 홀로 혁신위원장 인선을 결정했다. 왜 이 대표가 인재풀을 혼자 쥐고 돌리나.”(더불어민주당 지도부 관계자)
“이 대표가 ‘천안함 자폭’ 발언 논란이 드러나자 ‘나는 몰랐다’고 공개적으로 꼬리를 잘랐다. 대표가 당을 가지고 놀고 있다.”(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
이 대표가 주도해 당 혁신위원장으로 내정했던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임명 9시간 만에 사퇴한 것을 두고 당내 후폭풍이 거세다. 혁신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패싱’당한 지도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황당한 결정”, “우리가 한 방 먹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모습이다. 비명(비이재명)계는 “이 대표가 혁신위 출범 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립 성향 의원들도 “이 대표가 저렇게 어설프게 하면 리더십은 점점 더 흔들릴 것”이라며 비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 원내지도부도 “이래경이 대체 누구냐”
6일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이 대표는 4일 오후 6시 최고위원을 비롯한 고위 당직자들과 박광온 원내대표 등이 참석하는 최고위 간담회를 소집했다. 당 인선 등을 총괄하는 조정식 사무총장이 혁신위원장 선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뒤 민청학련 발기인, 한반도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장 등 이 이사장의 주요 경력이 적힌 프로필이 배부됐다고 한다.
이어 이 대표가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시민사회 원로들의 추천이 있었다”며 직접 이 이사장 추천 이유를 밝혔다. 야권 원로인 함 신부는 2019년 이 이사장과 함께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추진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올해 1월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 라디오에서 “(윤석열 정권의) 이른바 표적 수사”라고 주장했다. 함 신부 측은 이 이사장 추천 경위 등을 묻는 동아일보 질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답했다.
이 이사장에 대해 한 참석자는 “이 이사장이 나이(69세)가 많고 운동권 출신이라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다”고 이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이 대표 측근인 지도부 소속 의원이 “이 이사장이 기업을 운영한 경력이 있고, 퇴직할 땐 지분 처분으로 받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9시간 만에 사퇴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도 이 대표의 ‘깜깜이식’ 추천 및 일방적 통보에 불만이 거센 모습이다. 회의에 참석한 지도부 소속 의원은 “참석자들이 이 이사장에 대해 사전에 전혀 정보가 없었다”며 “민주화운동 경력과 기업 경영 경험이 있고, 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함께 활동했다고 하니 수긍한 것”이라고 했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확인 가능한 “천안함 자폭” 등의 음모론성 주장 등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과정에서 완전하게 배제된 것. 한 최고위원은 “그런 논란을 미리 걸러내지 못한 건 우리 잘못”이라며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이뤄지지 않으니 리스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도 간담회가 끝난 뒤 원내지도부에 “이래경이 누구냐”며 김근태계인 이 이사장의 평판에 대해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밀실 인사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한 친명계 지도부 소속 의원은 “미리 알았다면 절대 임명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박성준 대변인은 SBS 라디오에서 “혁신위원장은 비밀성을 보장하면서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 당내 “총선 앞두고 이재명 체제로 안 돼”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코인 사태’ 등 당 악재를 수습하기 위한 첫 단추부터 꼬이면서 당내에선 ‘이재명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부터 물러나야 한다는 것.
서울에 지역구를 둔 중립 성향의 의원은 “이 대표가 생각하는 혁신이 결국 ‘이재명 중심으로 딴소리하지 말고 뭉치자’는 것인가”라며 “차기 혁신위 인선은 당 대표가 어느 정도 권한을 내려놓을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명계 수도권 지역 의원은 “최근 의원총회에서 당내 민심 악화를 체감하고 위기의식을 느낀 이 대표가 자기 마음대로 혁신위원장을 앉히려다 무리수를 둔 것”이라며 “앞으로 자연스레 원내지도부에 좀 더 힘이 실리지 않겠냐”고 했다. 한 지도부 소속 의원도 “이 대표가 당원, 의원, 국민들에게 직접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페이스북에 “‘민주당 지도부의 반헌법적 행태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이 대표의 사과와 권칠승 수석대변인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도 이 대표를 향해 “그릇된 인사와 당직자의 망언에 대해 국민과 천안함 용사들 앞에 사과하고, 천안함을 대하는 왜곡된 인식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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