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 ICAO에 ‘北무인기 침공’ 진상조사 요청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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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북한 무인기 침공과 관련한 진상조사 및 북한 규탄 결정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26일 북한이 사전 예고 없는 무인기 도발로 우리 영공을 침해하고 민간항공기 운항을 저해한 데 따른 것이다. ICAO가 진상조사에 나설 경우 북한의 침해 행위를 규명하는 건 물론, 우리 군의 맞대응을 둘러싼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가릴 근거도 일부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2023.1.6/뉴스1 ⓒ News1
● 진상조사 요구시 정전협정 시비 가릴 수 있어
2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외교부는 최근 북한의 무인기 침범이 ICAO의 모태가 되는 국제민간항공협약(시카고 협약) 위반인 지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의 무인기가 △영공주권을 침해했고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서의 민항기 운행을 각각 1시간 12분, 48분씩 중단시켰다는 점 등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보인다. 시카고 협약은 민항기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민항기 운행에 영향이나 위해를 가하거나 ‘무조종자 항공기’가 체약국의 특별한 허가 없이 체약국 상공을 비행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ICAO에 진상조사와 규탄 결정 등을 요청하겠다고 결정하면, 가장 빨리 열리는 이사회에서 ICAO 사무총장에게 진상조사팀(FFIT) 구성을 요구할 수 있다. ICAO가 진상조사를 하기로 결정하면 FFIT 차원에서 현지 방문조사나 면담을 진행하고 이후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는 식이다. ICAO 이사회는 2021년 5월 벨라루스 항공당국이 반체제 언론인이 타고 있던 항공기를 폭탄테러 신고를 핑계로 강제 착륙시킨 사건에 대해 유럽연합(EU)이 이사회 소집을 요구한 지 4일 만에 진상조사에 착수해 지난해 7월 보고서를 통해 배후를 밝혀낸 바 있다. 아울러 3년마다 열리는 ICAO 총회에선 규탄 및 재발방지 촉구가 담긴 결의 채택도 추진할 수 있다.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에선 북한이 사전 통보 없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ICAO에 규탄 결정을 채택하도록 나선 전례가 있다. ICAO 역사상 북한 미사일 관련 결정이 채택된 최초의 사례였다. 2016년 5월에는 ICAO에서 북한의 GPS 신호교란 행위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3년 만에 열린 ICAO 41차 총회에서도 북한의 예고 없는 미사일 시험 발사 규탄 결의가 채택된 바 있다. 다만 외교부는 관련 언급은 일체 없이 우리나라가 이사국 8연임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만 냈다.

왼쪽은 2017년 ICAO이사회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한 규탄결정을 채택했다고 알린 외교부 보도자료. 오른쪽은 제41차 총회 관련 보도자료. 외교부 홈페이지
● ICAO 조사 요청 시 군 정보 노출 등은 부담
선례도 있고, 다각적으로 법률도 검토하고 있지만 정부는 총체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선뜻 ICAO의 문을 두드리진 못하는 실정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진상조사팀에 우리 군의 대응에 대해서도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며 “의도치 않게 군사정보들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가 “북한 무인기로 추정”이라고만 발표해 무인기의 출처를 100% 확신할 순 없다는 점, 북한이 무인기 관련해선 침묵으로 일관해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측면이다.

탄도미사일과 달리 무인기의 특성상 국지도발에 해당해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을 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다른 외교부 관계자는 “다자 국제기구에 진상조사를 규명해달라고 요청하려면 도발의 주체가 확실하고 국제적인 우려도 확실해야 한다”며 “무인기는 남북관계로 가해·피해가 한정되는 만큼 실익을 따져봐야 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실 관련 진상규명단 주최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인한 북한 무인기 대응 공백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그럼에도 정부가 전방위적인 대북 압박을 위해 결국 ICAO 조사를 요청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가해 주체가 북한 정부면 충분하고 진상조사 시 민간항공에 영향을 줬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게 고려된다”며 “신냉전 시대에 북한에 취할 수 있는 국제 조치가 많지 않지만 우리 측 피해를 적극 따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북한 무인기 침투에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군도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라고 지시한 것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ICAO가 진상조사에 나설 경우 유엔군사령부 조사 등으로 이어져 정전협정 위반 주장에 대한 반론 근거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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