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투입 조종사 “모두 긴장…배터리 아끼려 에어컨 끄고 대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7일 19시 33분


코멘트
아프가니스탄 현지 조력자와 가족들을 태운 한국 공군 수송기가 26일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영종도=홍진환 기자
아프가니스탄 현지 조력자와 가족들을 태운 한국 공군 수송기가 26일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영종도=홍진환 기자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 이태규 소령은 16일 ‘미라클(기적)’ 작전 임무요원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중급유수송기(KC-330) 조종만 30개월. 100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온 그에게도 우리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조력자와 그 가족들을 구출하는 이번 작전은 “테러의 위협이 높았고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 종료될 때까지 긴장감이 극심했다”고 한다. 수송기에 탑승한 378명은 26일 한국 땅을 밟았다.

이 소령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기존 다른 항공작전들은 전반적인 요소들이 모두 확정된 상태로 작전을 시작한다”면서 “현지 상황이 워낙 불안정해 미확인된 사항이 많았다”고 했다. 가족들의 걱정도 컸다고 한다. 그는 앞서 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승조원 복귀 작전(‘오아시스’ 작전) 임무를 완수했다.

일주일 남짓한 준비기간 동안 그는 임무지로 거론된 주요 공항들로 향하는 비행경로를 만들고 수정했다. 수송기에 젖병과 분유를 챙겨간 것도 3명의 신생아가 수송 대상자에 포함돼있다는 얘기를 들은 동료 조종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조력자와 가족들이 27일 오전 경기도의 한 임시 숙소에서 나와 충북 진천의 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조력자와 가족들이 27일 오전 경기도의 한 임시 숙소에서 나와 충북 진천의 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23일(현지시간) 기착지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한 요원들은 현지 코로나19 상황으로 숙소를 예약하지 못했고, 대사관 회의실과 로비에서 쪽잠을 잤다. 특히 조종사들은 방탄헬멧과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 35도가 넘는 덥고 습한 항공기 좌석에서 대기했다. 항공기 시동을 걸기 위한 잔여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에어컨도 틀지 않았다고 한다.

출발 당일 대상자 378명을 수송기에 탑승시키는데 5시간 이상이 걸렸고 이륙시간도 25일(현지시간) 정오에서 26일 자정으로 12시간 이상 지연됐다. 게다가 수송기의 탑승 가능 인원인 300명을 초과한 상태라 요원들은 개인수하물을 최소화했다. 이 소령은 “생후 20일 된 신생아가 엄마 품에 안겨 타는 걸 보면서 대견하면서도 또다시 11시간이 넘는 비행에 힘들어하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기압 변화에 예민한 어린아이들을 고려해 기내 압력 조절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소령은 “도착 직후 (아프간 조력자 및 가족들은) 힘든 여정에 많이 지쳐 보였고 차분했다”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낯선 곳으로 향하는 아프간 사람들을 보면서 국가와 가족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