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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정부가 북한인권 조사 독점하면 안 되는 세 가지 이유 [우아한 청년 발언대]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입력 2020-10-11 12:30업데이트 2020-10-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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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형 이래진 씨(가운데)가 6일 서울 종로구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를 찾아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게 보내는 유엔 차원의 공식 진상조사 요청서를 전달하기에 앞서 요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래진 씨, 하태경 의원.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과거 소련의 경제성장률은 늘 논란거리였다. 1928~85년의 기간 동안 소련 통계국은 연간 평균 8.8%,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4.3%로 계측했다. 열악한 경제상황과 엄혹했던 정치적 환경을 함께 고려할 때 소련 공식통계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주목할 점은 CIA 자료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미소대결이 심화되고 있으니 CIA가 권력과 예산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이 역시 부풀린 것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던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자 카닌(Khanin)의 독립적인 조사에 따르면 같은 시기 성장률은 평균 3.33%에 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련의 노동생산성을 너무 낮은 수준으로 판단하는 등 보수적인 추정치라는 비판을 받으며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쓸모가 있었다. 바로 소련과 CIA 등이 내놓은 다른 자료들과의 비교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정황을 고려할 때 소련의 실제 경제성장률은 CIA와 카닌의 중간 정도에 위치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로써 우리는 소련의 성장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을지 대략적인 범위(range)로 상당히 좁게 추측가능하다. 카닌의 데이터는 하한선(lower bound)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과학 자료들은 상호의존적이다. 추정(estimation)을 해야 하는데, 어떠한 방식도 완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자료를 놓고 무엇이 사실인지를 토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자료와의 비교가 필수불가결하다. 특히 정부가 제작한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연구자료로서의 신뢰성을 의심받게 된다. 정치적 입김의 작용으로 인한 왜곡 가능성이 상존(常存)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주의 연구에서 이런 경향은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연구 대상이 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정보 공개가 불완전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입장이 적대적이든 유화적이든 뚜렷하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민간기관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하나원 면접조사활동을 중단시킨 것은 정부 조사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사회과학 자료의 근본적인 한계에 딱 들어맞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통일부는 21년간 지속돼 온 NKDB의 인권실태 조사와 14년간의 백서 발간을 중단 위기에 놓으면서, 조사 제한 조치의 근거로 자료의 중복을 들었다.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북한인권조사를 시행하는 기관은 북한인권기록센터, 통일연구원, 유엔인권서울사무소와 NKDB까지 4개나 되는데 굳이 동일한 조사를 반복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CIA와 카닌의 사례를 생각한다면 통일부와 유관 기관들이 북한 인권실태조사를 독점할 경우 되려 정부 조사의 신뢰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다른 연구자들의 자료와 비교하는 검증이 필요한데, 다른 자료가 더 이상 없다면 이 과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만 득세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부의 조치는 완벽한 자충수다.

지금까지 수행된 북한 인권 조사들이 중복된다는 견해 자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민간단체의 경우에는 정치적·사회적 권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현 정부 조사의 경우에는 경제적 권리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는 다분히 이질적인 조사라고 생각된다. 또 NKDB는 그간 20여년간 정보를 축적했다는 강점이 있는데, 지금 그만두게 될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북한 인권의 추이를 더 이상 관찰할 수 없게 된다. 조사 제한은 북한을 더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놓치게 할 뿐이다.

오히려 북한 인권 조사 기관은 대폭 증대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필자는 NKDB 역시 북한 인권을 완벽히 객관적으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수 성향의 단체이기 때문에 특정부문에 치우쳐서 파악할 것이다. 따라서 NKDB뿐 아니라 북한에 유화적인 성향의 단체들까지도 다양하게 포함시켜 북한 인권을 다각도로 조망해야 한다. 그 이상의 판단은 자료의 수보다도 더 많을 개별 연구자들의 몫이다. 어느 불교 경전의 이야기처럼, 코끼리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누가 만지든지 불완전한 모습으로밖에 재현할 수 없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북한의 현실은 누구에게나 캄캄하다. 정부가 인권 조사를 가장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은 엄청난 오만이다.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여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근 통일부의 조치는 한국 국가기관의 데이터가 열악한 사정에 있다는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자료 구축 과정이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은행의 북한 경제성장률 추계에 집권세력의 의중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를 데이터에 마사지(massage)를 했다고 표현한다. 보수정부 때는 북한이 위기상황에 봉착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낮게 추정한 반면, 진보정부 시기에는 협력의 여지를 위해 과대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료의 정치권력에 대한 ‘편이(偏移, shift)적 편의(偏倚, bias)’다.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경제통계마저 마사지를 받는 형편인데,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른 인권 문제가 정부에 의해 독점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조사기회를 민간에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비교 대상을 자처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이로써 지금까지의 낮은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처가 필요하나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통일부의 조사 제한 조치는 사실 예고된 위기였다. 현 정부 들어 북한 인권 조사 자체가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통일부의 국회 제출자료에 따르면 NKDB가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민에게 시행하는 설문 문항수는 2016년 35개였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12개로 축소됐다. 이후 2018년 8개, 2019년에는 6개로까지 쪼그라들었다. 문항 삭제 및 축소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간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자료 공개도 비공개 원칙으로 바뀌었다. 통일부 산하의 북한인권기록센터는 2018년부터 연례 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NKDB 조사 중단 건이 공론화되고 나서야 뒤늦게 ‘공개용’ 북한인권보고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처럼 자세한 자료를 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대비하려면 현실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을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의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막는다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데이터의 정치적 편향성과 현 정부의 정치적 성향을 함께 고려할 때, 설문 축소와 보고서 비공개, 금번 조사 제한은 북한 정권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한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바람직한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로써 얻는 이득은 일시적인 데 불과할 것이나 그 부작용은 영구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 연구가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다. 나중에는 우리가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심지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에 입맛에 맞는 정권맞춤형·시대착오적인 조치”라며 “정부·여당이 이념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필자도 적극 동의한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선 지금, 이 말대로 정책을 마련해 주길 당부한다. 정권맞춤형·시대착오적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길을 따라가는 대신 다양성과 자유의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정부의 자료 독점이 불러오는 음모론은 한반도의 미래를 열기는커녕 불필요한 남남갈등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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