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정권에 시장이 필요한 이유 [우아한 청년 발언대]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입력 2020-10-25 14:00수정 2020-10-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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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저마다 가지고 나온 생활용품과 식재료를 장마당에서 판매하고 있다. 북한의 배급체계가 무너진 뒤에는 주민 대부분이 장마당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열악한 경제 상황에 처해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데는 누구의 이견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을 위해 경제성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시장이 필수하다는 것이 16세기 국부론이 주는 교훈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의 이기심에서 추동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국가의 부를 증대시킨다는 혁신적인 의견을 냈다. 당시 유럽 각국은 정부 주도로 금을 많이 실어 나를수록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중상주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 구식 아이디어에 철퇴를 가하며 시장의 발달에 중점을 두었다. 조직적인 국가권력보다는 수평적인 민간이 경제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관찰이다. 계획이 아닌 시장이어야만 한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그런데,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시장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시장을 도입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점에서 걱정스러울 것이다.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것이 정권안정성을 침식시킬 염려가 있다. ‘경제적 자유의 허용이 정치적 자유의 요구로 이어지지는 않을까’라는 물음 역시 큰 고민거리일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관련성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서로 엇갈리는 결론을 내고 있다. 사례로써 보면 한국과 중국을 쉽게 비교할 만하다. 두 나라 모두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중국은 아직도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북한의 경우에도 경제성장 시 정권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절대로 자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북한 정권에게 경제성장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제재와 재난의 이중고에서 북한 경제가 쪼그라드는 상황, 북한 정권의 설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김정은의 수세(守勢)는 최근 열병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고존엄인 그가 ‘미안하다’며 인민 앞에서 울먹여야만 했다.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독재국가에서도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미 김정은의 반대파는 지지파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다만 가스가 가득 찬 가연성 방에 발화점을 차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따름이다. 김정은은 정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조지 5세가 말하듯, “말 위에서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광대로서 국민들 앞에서 아부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경향은 점차 심화될 것이다. 열악한 경제상황을 감출 수 없었을 때 김정은이 할 수 있는 것은 주민들 앞에서 눈물로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경제의 개선 없이 상황이 더 악화되면, 나중에는 무릎을 꿇을 자리마저도 찾지 못해 더 깊은 한탄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은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필요로 한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준 지혜는 국가의 부유함이 독립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시장활동에 따라오는 결과라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북한에서도 이미 시장화(marketization) 경향이 만연하다. 여러 조사에서 탈북민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 중 약 70% 가량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을 지지하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거센 셈이다. 북한 정권은 시장 방향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 집권 후 3%가량의 반짝 경제성장도 시장의 제한적 허용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사실 북한 경제의 진짜 핵심은 성장이라기보다는 시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시장이 공식적 제도로서 인정되지 않는 한, 비공식 시장활동은 높은 비효율성으로 인한 한계가 있다. 작금의 상황은 주민들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고자 하나, 정권이 기를 쓰고 막는 기이한 형국이다.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절정에 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눈물’이라는 표면에 집착한 김정은이 놓친 걸은 ‘시장’이라는 근본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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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은 정치적 통제의 측면에서도 북한 정권에게 불리하다. 북한 주민들은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 관료들에게 상당한 뇌물을 주고 있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에 의하면 1996-2007년의 기간 동안 가계지출 중 뇌물의 비중은 약 10%정도이고 이는 전체 GDP의 6~7%를 차지한다. 소련 붕괴 직전의 지대추구행위가 GDP 대비 2.2%임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높은 수치다. 이 과정에서 북한 관료들은 정권보다는 주민들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국영상업망의 붕괴로 관료들의 임금 지급이 어려워진 반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경제활동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뇌물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에 대한 충성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 반대급부로, 관료집단까지 더해진 피지배계층은 더 강력한 힘이 생기게 된다.

요컨대 시장을 도입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북한 정권에게는 더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 침체에 빠진 경제와 침식되는 정치적 영향력은 지지층을 잃게 하는 동시에 통제마저도 어렵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화점이 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김정은은 너무 불안정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김정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하루 빨리 제도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라는 것이다. 이는 경제성장이라는 정권의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서 역시 필수불가결하다. 물론 북한 정권에게 시장 도입과 경제성장의 선택은 위험한 도박일 것이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한 정권은 몰락의 위기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확실한 위험과 불확실한 부흥 사이, 김정은이 선택할 길은 과연 무엇일까.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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