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영변 전체 폐기 제안”… 몇시간 뒤 美 “일부만 닫겠다고 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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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하노이 노딜’ 후폭풍]핵시설 폐기 놓고도 서로 다른 말

급하게 마련된 北회견 북한 리용호 외무상(책상 오른쪽)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1일(현지 시간) 새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노이=AP 뉴시스
급하게 마련된 北회견 북한 리용호 외무상(책상 오른쪽)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1일(현지 시간) 새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노이=AP 뉴시스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놓아 본 역사가 없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일 오후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자신들이 획기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놨는데도 미국이 반응하고 있지 않다며 “이런 회담에 의미를 둬야 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변 핵시설 전체’를 내놨다는 북측의 주장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서면서 마찰이 격화되고 있다. 북-미는 회담장을 벗어난 지난달 28일 오후 1시경부터 그 다음 날 저녁까지 24시간이 넘도록 기자회견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장외 설전’을 이어갔다. 영변 핵시설이 오래된 ‘핵 고철’인지 아니면 여전히 북한의 핵심 핵시설인지, 북한이 폐기하겠다고 제안했다는 영변 핵시설이 전체인지 부분인지 등 핵심 이슈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면서 급기야 진실공방에 들어간 것이다.

○ 북 “영변 폐기 역사적 제안” vs 미 ‘더 원한다’



논쟁은 지난달 28일 오후 2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 폐기 의향을 보였느냐’는 질문에 “(미국은) 그보다 더한 걸 원한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말고도) 다른 것들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여기에 “영변 핵시설은 물론 중요하지만, 미사일 탄두와 무기 시스템 등 다뤄지지 않은 요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영변 폐기’ 카드에 상당히 낮은 값을 매긴 셈이다.

북한은 약 10시간 후인 1일 0시 15분경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의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트럼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리용호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이런 기회를 다시 보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능력의 사실상 전부라고 강조한 것.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와 2007년의 10·3합의의 동결 및 불능화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영변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이번엔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영변을 넘어 고도화된 북한의 핵능력을 문제 삼고 있는 트럼프가 이를 거절한 것이다.

○ 미 “북, 영변 일부 폐기만 제안” 재반박

영변 핵시설에 얼마의 값어치를 매길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던 북-미는 1일 오전부터 새로운 쟁점을 두고 한층 더 치열한 진실게임에 돌입했다. 리용호와 최선희가 심야 기자회견에서 ‘플루토늄+우라늄’ 카드로 ‘영변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과 ‘영변 핵 단지 전체’를 내놓을 것처럼 주장했는데, 미 국무부가 익명의 고위 관계자의 입을 통해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제안한 것은 영변 핵시설의 ‘일부’였다고 반박한 것.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측의 심야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필리핀 마닐라에서 익명을 전제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제안은 영변 핵시설 일부분(a portion of the complex)의 문을 닫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영변엔 수많은 기관과 건물, 그리고 별채 등 300개 이상의 개별 시설이 존재한다”며 “북한은 (협상 과정에서 영변 핵시설의) 정확한 정의를 규정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단순히 영변 핵시설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수준을 넘어서 영변에 존재하는 일부 핵시설을 내놓기를 거부하거나 숨기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의 재반박에 북한은 격하게 반응했다. 최 부상은 1일 기자들에게 “우리는 영변에 대해서 정말 깨끗하게 포기하고 깨끗하게 폐기할 입장을 내놨다”고 했다. 영변 핵시설 ‘전체’의 포기를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북측 주장에 신빙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북-미 갈등이 고조될 새로운 뇌관이 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비교적 은닉이 쉬운 우라늄 농축시설을 기존에 알려진 규모 이상으로 영변에서 운영하다가 미 정보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됐을 가능성 등이 제기된다. 국무부 관계자는 ‘영변의 어떤 부분이 빠졌는가’란 질문에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하노이=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2차 북미 정상회담#하노이 노딜#김정은#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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