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美대북대표, 文정부 인사에게 대북 속도조절 주문한 듯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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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訪韓) 이유를 두고 말들이 많다. 정부는 한미 양국이 북핵문제에 더욱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방한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측면이 적지 않다.

비건 대표가 카운터파트너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미국에서 불과 일주일 전에 만났음에도 굳이 방한해 우리 정부 대북관련 주요 인사를 두루 접했다는 점, 청와대 방문 시에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보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더 먼저 만났다는 점, 정부가 비건 대표의 발언 내용 등에 대해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은 커진다.

비건 대표는 지난 29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난 데 이어 이 본부장과 만난 후, 오후엔 임 실장과 면담했다. 30일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만난 이후 정 실장을 만나면서 외교·안보·대북 라인 관계자와의 만남을 잇달아 가졌다.

이 때문에 비건 대표가 우리 정부에게 북한 문제에 대한 속도조절을 주문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방문 시 대북 제재 완화의 여론을 환기시키려 애썼고 교황의 방북을 주선했다. 또 정부는 JSA비무장화에 이어 남북 철도연결 착공, 개성공단 재가동 준비 등 최근의 북미관계에 비해 앞서가는 행보를 보인게 사실이다.

외교가에서도 이번 방한 배경에는 북미 관계보다는 한미 관계에 더 방점이 찍혔다고 보고 있다. 물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과 접촉해 실무회담을 진행하지 않겠느냐는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이는 청와대가 부인한 상태다.

때문에 이번 비공개 회담에서는 미국 측이 대북제재와 관련 ‘보폭 맞추기’를 요구했을 확률이 높다. 미국 국무부는 연일 대북 제재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 사업에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게다 비건 대표가 방한하는 시점에 맞춰 국무부는 북한 불법 유류 환적 현장 사진을 공개하며 확실한 대북제재 이행을 강조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30일 비건 대표와의 면담 자리에서 “남북 관계와 미국과 북한 관계에 대해 서로 보조를 같이 맞추는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하게 돼 아주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방한이 대북정책을 둔 한미 간 보조 맞추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임 실장과의 면담 이후 서면 브리핑을 내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2차 북미회담 진행 사안에 대한 심도깊은 대화가 오갔다”고만 밝힐 뿐 그 이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30일 진행된 정 실장과의 2시간가량의 면담과 관련해서도 청와대는 “정 실장과 비건 대표는 한미 간 상호 입장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양국 공조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한 것으로 평가했다”고만 밝힐 뿐 비공개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아울러 한 매체는 같은 날 비건 대표가 면담 자리에서 내달 9일 예정된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 때 까지 남북 경협 중단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통일부는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정면 반박했지만 어떻게든 미국 측의 속도조절 메시지는 담겨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게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이 본부장과 강 장관은 절차적인 만남인 것이고 대북정책에 관련해 정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와 NSC 관계자들을 만나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아무래도 속도 조절에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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