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표지석 없애라’는 진보… 지지층 포용수위 고심하는 여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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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1년, 관계 설정 딜레마

#1. 최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막 도정을 시작한 경남에서는 ‘홍준표 표지석’이 논란이다. 2016년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남도의 빚을 다 갚았다”며 ‘채무 제로(0) 표지석’을 설치했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적폐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는 김 지사 당선 뒤인 지난달 28일 이 표지석을 땅에 파묻었다.

경남도 인수위원회는 “표지석을 일방적으로 훼손한 것은 실로 유감”이라며 표지석을 원상 복구했다. 그러자 이 단체는 “경남도가 표지석을 그대로 두는 것은 적폐 잔존 세력의 눈치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온적 개혁과 타협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 지사와 진보 시민단체의 첫 화음이 불협화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2. 문재인 대통령을 3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 직전 비공개로 만난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노동계를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노총은 최저임금을 개악했다며 홍 원내대표가 6·13지방선거 유세를 다니는 동안 계속 따라다니며 항의 시위를 했다. 김 위원장의 말에 문 대통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침묵했다.

두 사례는 지방선거 후 더 고공행진하고 있는 집권 여당의 숨은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집권 1년을 맞은 청와대는 최근 진보 진영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한 참모는 “문 대통령이 최근 시민사회와 관련해서는 보고를 듣고도 최대한 말을 아끼는 듯하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 압승으로 중앙 정부는 물론이고 지방 정부까지 여권이 석권하면서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진보 진영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보수층까지도 껴안으며 국정 운영을 해야 하는 청와대의 숙명적 고민인 셈이다.

청와대는 앞으로도 진보적 정책은 계속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3일 재정개혁특위가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인상 권고안이 대표적이다.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 진보 진영이 요구하고 있는 ‘부자 증세’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더 급진적인 정책을 더 빨리 추진하라는 것이다. ‘홍준표 표지석’ 논란도 “보수·중도층도 껴안으면서 점진적으로 가겠다”는 김 지사 측과 “왜 더 과감하게 나서지 않느냐”는 진보 진영 간의 갈등이 핵심이다.

노동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노동계에 “1년 정도는 시간을 주면서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그 1년 동안 청와대는 양대 지침 및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 최저임금 인상 등의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민노총은 “1년이 지났지만 노동 정책 공약을 이행할 의지와 계획, 로드맵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노동계는 대대적인 하투(夏鬪)를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4일 “제도권 바깥에 있는 진보 진영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국정을 운영하면서 이를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며 “진보 진영만 바라보고 국정 운영을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외면한다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1국정과제였던 적폐청산을 올해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이 그 예다. ‘진보적 개혁’이라는 방향은 명확하지만 폭과 속도를 조절해 반발을 최소화하겠다는 현실론이다.

청와대 2기 개편에 따라 사회혁신수석실의 명칭을 시민사회수석실로 변경한 것도 이런 ‘현실론’을 반영한 것이다. 명칭에 ‘시민사회’를 못 박아 각종 진보 단체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으면서도 “우리가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설득해 불만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고민은 진보, 보수 진영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했던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도 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진보 진영이 노무현 정부에 등을 돌린 계기”로 꼽기도 했다. 충분한 소통 노력 없이 보수층을 안으려다 주력 지지층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친문(친문재인) 인사는 “진보, 보수 진영 중 어느 한쪽만을 무작정 바라보지는 않겠다는 게 대통령의 스탠스”라며 “문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는 것에는 양쪽의 간극을 좁혀 불만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홍준표#표지석#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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