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서 초등생 돌보니 안심” 내년 전국 퍼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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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모 대신 지역사회가… ‘초등생 마을돌봄’ 도입
정부, 초등 저학년 마을돌봄센터 확대

《초등학교 입학 시기인 3월을 앞두고 만 7세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들은 ‘멘붕’(멘털 붕괴)에 빠진다. 아이가 오후 1시면 집으로 오는 ‘하교 쇼크’를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취학 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무려 5, 6시간 동안의 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결국 학원을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일명 ‘학원 뺑뺑이’에 아이도, 엄마도 지쳐간다. 그나마 믿을 만한 ‘초등학교 내 돌봄교실’은 포화 상태다. 이에 정부는 지역사회에서 초등생 저학년을 돌보는 ‘마을 돌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

불안했는데…. 조금은 안심이 된다. 손영희 씨(41·경기 광명시)는 퇴근길에 아파트 단지 내 노인회관에 설치된 보육시설에서 초등생 딸(9)을 데려온다.

강사로 일하고 있는 손 씨는 “지난해가 생각난다”고 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그래도 오후 6시까지는 돌봐주잖아요.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오후 1시면 하교하더군요. 맞벌이 부부라 맡길 곳이 없다 보니, 속된 말로 ‘멘붕’이 왔어요.”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방과후 아이들을 봐주는 ‘돌봄교실’이 운영됐다. 하지만 경쟁률이 3 대 1이나 됐다. 손 씨는 “맞벌이 엄마들은 돌봄교실에 못 들어가면 난리가 난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손 씨는 자신의 아파트 단지 내에 설립된 돌봄터를 알게 됐다. ‘학교 밖 돌봄’을 위해 광명시가 설치한 초등생 보육시설이다. 손 씨는 퇴근 전까지 딸을 이곳에 맡기며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초등 돌봄절벽 심각… ‘마을돌봄’ 모델, 내년 전국 확산

아파트 내 빈 공간에 초등생 저학년(1∼3학년)의 돌봄공간을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마을돌봄’ 제도가 올해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보건복지부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방과 후를 지역사회에서 돌보는 ‘마을돌봄’ 시범사업에 참여할 지자체를 3월까지 선정할 방침”이라고 15일 밝혔다. 10곳의 지자체에서 연말까지 초등생 돌봄시설을 운영한 후 최종적인 ‘마을돌봄’ 모델을 확정해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정부가 구상 중인 ‘마을돌봄’ 모델의 특징은 ①아파트 내에 설치 ②1명의 상근직원 필수 배치 ③‘보육 중심+교육 보조’ 운영으로 압축된다. 복지부 배경택 인구정책총괄 과장은 “여러 지자체에서 실험적으로 시행해온 초등생 돌봄제도의 장점을 합친 형태”라며 “서울 노원구는 지자체가 직접 고용한 상근자를 배치해 보육의 질을 높였고, 과천시 ‘마을돌봄 나눔터’는 아파트 빈 공간을 활용해 학교 밖 돌봄의 불안요소인 안전 우려를 감소시켰다”고 설명했다.

마을돌봄제도가 시행되면 초등 1∼3학년은 아파트 단지 내 주민센터, 노인회관 등을 리모델링한 시설에서 오후 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돌봄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시설당 20∼30명 등 총 10만 명이 1차적으로 시설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 ‘취학 전 돌봄’→‘취학 후 돌봄’으로 패러다임 전환

학교 밖 초등생 돌봄이 강화되는 이유는 이 기간의 어려움이 여성의 경력단절, 나아가 저출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워킹맘 도모 씨(35·서울 여의도)는 3월이 두렵다고 했다. 자녀가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뒀기 때문. 도 씨는 “아이에게 ‘학원 뺑뺑이’를 시키기 싫어 퇴직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의 자녀 연령별 경력단절 여성 조사를 보면 2016년 4월에는 6세 이하 자녀를 가진 직장여성 103만2000명이 회사를 그만뒀지만 지난해 4월에는 96만3000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초등 저학년 연령대가 포함된 7∼12세 아이를 둔 여성의 경력단절은 같은 기간 33만 명에서 33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통계 결과 초등 1∼3학년 자녀를 둔 직장 여성 3만1844명이 지난해 신학기인 2, 3, 4월 회사를 그만뒀다.

그럼에도 초등생 돌봄절벽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현재 초등학교 내에서는 ‘초등돌봄교실’ 제도를 통해 평균적으로 오후 1시부터 5시경까지 돌봄이 이뤄진다. 초등생 1∼3학년은 전국 260만여 명. 하지만 돌봄교실 이용 인원은 24만 명에 그친다. 학교 1곳당 2, 3교실만 운영되는 탓이다. 교육부 박지영 방과후돌봄정책과장은 “5년 새 돌봄교실 이용자 수를 10만 명이나 늘려 더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미취학 자녀에게 보육 지원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취학 자녀 쪽으로 보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한양대 이삼식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여성경력이 단절되는 시기는 0∼2세의 ‘초기 돌봄’,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초등 저학년 돌봄’, 대학 가기 전 ‘입시 돌봄’으로 나뉜다”며 “두 번째 시기에 지원을 강화해야 저출산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유럽이나 일본 등 저출산을 겪은 선진국들도 초등생 돌봄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호르트(Hort)’라는 지자체 돌봄시설에서 맞벌이 부부 자녀를 저녁까지 지원한다. 일본 역시 ‘방과후 아동클럽’ 제도 등을 통해 오후 7시까지 초등생을 돌본다. 서울여대 정재훈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교 안 돌봄’과 ‘학교 밖 돌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마을돌봄#초등학교#맞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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