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이재용 영장청구 막판 고심… ‘구속 사안인가’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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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 치닫는 삼성 수사]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을 22시간 동안 ‘밤샘 조사’ 하고 돌려보낸 뒤 구속영장 청구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특검 수사팀은 삼성전자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딸 정유라 씨(21) 모녀를 지원한 것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성사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보고 있다. 특검이 만약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박 대통령에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된다.

 반면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특검이 뇌물죄를 적용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 박 대통령-최순실 ‘공동 지갑’ 인정돼야 ‘포괄적 뇌물죄’ 성립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 중 한 가지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뇌물 혐의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 가운데 법정 형량이 가장 무겁다.

 특검 내부에서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박 대통령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전자의 최 씨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 논의는 삼성 측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은 2015년 3월 이전부터 이뤄졌다는 게 특검의 시각.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점부터 삼성은 계열사 합병을 통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검토했고, 박 대통령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검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2015년 7월 청와대에서 독대를 한 직후 삼성전자가 최 씨 모녀 소유인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78억 원을 송금한 사실을 가장 중요한 증거로 생각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연금이 합병을 찬성하도록 해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도왔고, 그 대가로 삼성은 최 씨 모녀를 지원했다는 것. 이 부회장도 여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따라서 특검은 삼성 측에서 특별하게 청탁을 하지 않았더라도 공무원의 포괄적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는 뇌물죄를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는 자세다. 하지만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최 씨 모녀가 지원받은 돈을 박 대통령이 취한 이득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최 씨가 이른바 ‘공동 지갑’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하지만 특검이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나 진술을 확보했는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만약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 ‘제3자 뇌물죄’ 적용하려면 ‘분명한 대가성’ 입증돼야

 이 때문에 특검은 이 부회장을 소환 조사한 뒤 하루, 이틀 시간을 갖고 영장 청구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포괄적 뇌물죄’ 대신 ‘제3자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제3자 뇌물죄’는 대가 관계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으면 적용할 수 없다. 삼성전자의 최 씨 모녀 지원이 박 대통령의 삼성 계열사 합병 지원 대가라는 인과 관계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된 시점은 2015년 7월 17일이고, 일주일 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이뤄졌으며, 삼성전자의 최 씨 모녀에 대한 송금은 같은 해 9월 이후라는 점이다. ‘독대-돈 전달-합병 성사’의 순서가 일반적인 뇌물 범죄의 경향인데, ‘합병 성사-독대-돈 전달’로 순서가 꼬여 있는 것이다.

 삼성 측이 “최 씨의 독일 법인에 돈을 송금한 것과 그보다 앞선 계열사 합병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강요받아 돈 준 게 구속 사안인가”

 이 부회장은 특검에 소환돼 “박 대통령이 독대 자리에서 승마 지원이 부실하다고 질책한 사실을 삼성 임원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지원을 요구했는지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특검이 뇌물죄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최고 권력자의 압박에 못 이겨 돈을 보낸 게 구속까지 될 사안이냐는 항변이 깔려 있다. 뭔가 바라는 쪽에서 먼저 공직자에게 금품을 주면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부회장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여러 대기업에서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이 있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이번 사건은 통상적인 뇌물 사건과 달리 금품을 주고받은 측이 그 성격을 놓고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삼성은 ‘강요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박 대통령과 최 씨 모녀 측은 ‘단순한 지원’이었다는 것. 따라서 뇌물죄 적용은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또 법원이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거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신중한 점도 특검의 부담이다. 지난해 9월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법원은 “법률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영장을 기각했다.

 만약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할 경우 특검 수사 전반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다른 분야 수사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준일 기자
#특검#이재용#삼성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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