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목맨 北대사관, 노동 착취도 모자라 관저 불법임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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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예’ 北 해외노동자]<5·끝>폴란드 北대사관 ‘황당한 동거’

 
대사관에 방송국 간판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중심가 모코투프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대사관 입구임에도 
이곳에 입주해 있는 현지 방송국 등 기업들의 간판만 붙어 있을 뿐 북한 대사관 문패나 국기는 없다. 입주 기업 직원들은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대사관에 방송국 간판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중심가 모코투프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대사관 입구임에도 이곳에 입주해 있는 현지 방송국 등 기업들의 간판만 붙어 있을 뿐 북한 대사관 문패나 국기는 없다. 입주 기업 직원들은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모코투프에 있는 북한대사관.

 매서운 눈초리로 삼엄한 경계를 하는 군복 차림의 경비원, 정문에 붙어 있는 촬영금지 경고문, 건물 곳곳에 달려 있는 폐쇄회로(CC)TV가 주변 분위기까지 얼어붙게 했다. 굳게 닫힌 정문은 번호판이 ‘073’으로 시작하는 북한대사관 차량이 드나들 때만 열렸다.

 대사관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100m 정도 걸어가 모퉁이를 돌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곳에 난 출입문으로는 출퇴근하거나 간식거리를 사 든 폴란드 현지인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입구에는 폴란드 회사 간판 10개가 붙어 있었다. 마치 대학가의 창업벤처 기업단지 같은 느낌을 주는 이곳은 분명 북한대사관으로 북한 땅이다.

 출입문을 나서는 폴란드 남성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혹시 이곳에서 일하느냐”고 말을 걸자 대뜸 “같이 들어가자”고 스스럼없이 제안했다. 북한 영토로 발을 내딛는 기분은 묘했다. 경비원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이 직원이 “우리 회사 손님”이라고 하자 아무 확인 절차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지난 10월 말의 일이었다.
○ 노동자 수출 어려워지자 대사관 불법 임대

 1989년까지 공산국가였던 폴란드의 역사를 반영하듯 북한대사관의 크기는 엄청났다. 북한이 운영하는 해외 대사관 중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주폴란드 북한대사관은 4개 동 가운데 크고 멋진 2개 동을 10개의 폴란드 기업에 임대해주고 있는 사실이 현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북한대사관은 노동자들의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어차피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교민도 많지 않다.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쫓겨나지 않고 비자를 연장해 오랫동안 머물며 달러벌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대사관의 주요 임무다. 직접 노동현장에 나가 노동자들의 사상교육과 함께 감시도 한다. 그러나 잇따른 북핵 실험으로 국제사회의 감시가 심해져 북한 노동자 송출이 여의치 않자 대사관이 불법 임대업으로 직접 외화벌이에 나선 것이다.

 모코투프는 바르샤바에서도 사무실 임대료가 가장 비싼 방송국 밀집 지역이다. 북한대사관에 들어와 있는 기업 10곳 대부분도 미디어 관련 업체들이었다. 쇼핑몰 기업과 카드 칩 개발 회사도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폴란드 회사원은 “폴란드의 미디어산업이 갑자기 커지고 있는데 임차할 만한 건물이 없어 이곳이 인기가 많다”며 “북한대사관의 돈벌이가 꽤 괜찮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에 물어보니 북한대사관 임대비용은 m²당 16달러 정도였다. 건물 면적이 워낙 커 매년 100만 달러(약 12억 원) 정도는 버는 것으로 추산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높이가 4, 5m는 족히 돼 보이는 천장과 지름 2m 크기의 샹들리에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높은 층고와 대형 샹들리에는 공산국가 건물의 상징이다. 바닥과 벽도 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어 눈부시게 환했다.
○ 노동자 수출 전진기지에서 포켓몬고 장소로

 
1층에 걸린 벽화 주폴란드 북한대사관 건물 1층 테라스 벽에 그려져 있는 대형 벽화. 1985년 만수대 창작사의 작품이다. 현재 이 테라스는 폴란드 방송 프로그램 제작 회사가 임차해 직원 휴게실로 쓰고 있다. 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층에 걸린 벽화 주폴란드 북한대사관 건물 1층 테라스 벽에 그려져 있는 대형 벽화. 1985년 만수대 창작사의 작품이다. 현재 이 테라스는 폴란드 방송 프로그램 제작 회사가 임차해 직원 휴게실로 쓰고 있다. 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기자를 안내한 폴란드 남성은 이곳에 입주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제작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 사무실을 통과해 1층 테라스로 기자를 이끌더니 “모든 직원이 궁금해하는데 대체 이 그림이 뭐냐”고 물었다. 이제야 생면부지의 한국인 기자를 안으로 끌어들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벽에는 길이 5m, 높이 2m가량의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옆 절벽이 그려진 이 벽화 아래쪽엔 ‘만수대창작사, 벽화창작단 1985년 8월 15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1959년 설립된 만수대창작사는 1000명의 예술가를 포함해 약 4000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 최고의 미술단체다. 대부분 평양미술대학 졸업생들이다. 김일성 동상 3만5000여 개를 만들 정도로 김일성 삼대 우상화에 앞장서고 있어 지금도 김정은의 특별지도 아래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직원은 “지난 8월 유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 VIP 고객들을 모시고 바로 이곳에 대형 스크린을 달아 경기를 관람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겠다”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에서 이 벽화는 포켓몬이 등장하는 곳이었다. 실제로 포켓몬고를 하다가 이곳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조국해방의 날 만수대창작사가 그린 그림이 최고의 상업적인 활동에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벽화가 있는 이 테라스에 대해 “대사관에서 전시 공간으로 썼던 장소 같다. 우리는 그냥 합판을 붙여서 직원 휴게실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사관에 입주한 폴란드 기업 직원들은 이곳이 북한대사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북한은 가장 폐쇄된 국가 아닌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업종인 미디어 회사들이 이곳에 입주해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직원들은 북한대사관 직원과 접촉한 적도 없고, 북한대사관이 기업 운영에 간섭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수대창작사가 그린 대형 벽화 바로 옆 1m 높이의 낮은 담장만 넘으면 북한대사관 마당이 나온다. 기자를 안내한 폴란드인은 “여름에는 대사관 마당에서 자라는 체리가 너무 탐스러워 담 넘어 들어가 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기자의 팔을 붙잡고 발길을 돌렸다.

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폴란드#북한대사관#불법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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