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공감→희망, 촛불은 집단치유 과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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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본 촛불집회

4차 촛불집회가 열린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옥상에서 이를 내려다보는 덕성여대 최승원 심리학과 교수.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4차 촛불집회가 열린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옥상에서 이를 내려다보는 덕성여대 최승원 심리학과 교수.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촛불집회에는 불의에 상처 입은 한국인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이곳 광화문광장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시민들은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고 함께 울고 공감하면서 집단치유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요. 여전히 우리 시민은 도덕적인 공동체를 희망한다는 점을 확인하며 다시 한국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어 갑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가 울린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4차 촛불집회 현장에 기자와 동행한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43)의 말이다. 촛불집회는 민심이 투영되는 장소이자 동시에 최순실 사태로 분노와 우울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심리가 그대로 터져 나오는 장소라는 설명이었다.

 이날 주최 측 추산 전국 98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촛불 민심은 한국인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분노와 우울’에서 출발한 감정이 커다란 ‘공감’의 울음을 거치면서 정화되고 다시 공동체의 희망으로 나아가면서 광화문의 촛불은 흔들리면서도 밝게 빛났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한국인의 분노와 희망의 격차만큼 촛불이 역동성을 띤다는 게 국내 주요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 “개발·자수성가 신화 무너져 공황”

 이날 4차 촛불집회 현장을 지켜본 최 교수는 집회에 어느 때보다 다양한 사람이 참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최순실 게이트로 청년층과 중장년, 노년층 할 것 없이 모두 집단공황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청년층은 취업이나 결혼 등에 실패하면서 가뜩이나 좌절감에 빠져 있는 세대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흔히 불운에 빠질 때 왜 일이 잘 안 풀리는지 알기 어렵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는 대체로 자신의 문제로 돌리는 심리, 즉 내재화 성향이 강하다는 것. 이 때문에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 세대다.

 그러나 ‘최순실 교육 농단’ 등을 통해 반칙과 부정을 저지르는 특권층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부정과 특혜로 나타나 충격이 더 컸다. 청년층을 짓눌렀던 우울감이 외부로 터져 나오는 현상인 셈이다.

 최 교수는 “중장년층과 노년층은 박 대통령을 근대화나 번영을 이끌어왔던 자부심과 생산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의미를 반영하는 존재로 여겼다”며 “대통령의 실정과 무능으로 이 같은 신화가 무너지면서 공황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근처에서 혼자 촛불을 들고 있던 박종훈 씨(66)는 “대통령이 비선 실세에게 휘둘린 것부터가 무능하다는 증거”라며 “믿었던 대통령이었던 만큼 충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대체로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고 ‘인지 부조화’를 줄이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번에는 분명한 정보가 많이 쏟아지자 허탈감에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 촛불집회는 공감과 희망의 상징

 심리학자들은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집단치유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불의와 실정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촛불집회에서 확인하면서 위안을 받게 된다.

 특히 이번 집회는 대중가요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감대를 넓히는 과정이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중앙대 심리학과 허지원 교수는 “10∼30대 젊은층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세대”라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또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집회를 비장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소통하고 공감대를 키운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와 중앙대 심리학과 정태연 교수는 100만 명의 평화집회라는 점에 주목했다. 곽 교수는 “평화집회는 공동체가 도덕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불의를 저지른 정권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 주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정 교수도 “여의도 불꽃축제에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과 달리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이 나온 목적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줍는다”며 “정권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을 스스로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은 부도덕하지만 시민 공동체는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를 스스로 되새기는 과정이자, 사회 변화를 희망하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설명이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촛불집회#심리학자#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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