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대리처방 주사제 성분 파악하고도 “모른다” 거짓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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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복지부, 강남보건소 조사 발표前 ‘청’ ‘안가’ 표현에 처방전까지 구체 내용 적힌 진료기록부 확보… 뒤늦게 “기록 사본은 받았다” 시인
프로포폴 처방의혹 나오는데도 식약처, 약품 폐기기록 확인 안해

  ‘비선 실세’ 최순실 씨(60)의 단골 병원인 차움의원과 김영재의원의 대리 처방 의혹을 조사한 보건복지부가 대리 처방을 뒷받침하는 모든 의료 기록을 입수하고도 한동안 거짓 해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씨 자매가 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대리 처방받았는지를 밝히기 위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도 허점투성이였다. 두 정부 부처가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대리 처방 기록 받고도 “아직 보고 안 받았다”

 복지부는 11일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 두 병원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대통령 자문의인 김상만 녹십자 아이메드 원장이 차움의원에서 박 대통령을 위한 주사제 처방과 혈액검사를 받으면서 24차례나 최 씨 자매의 이름을 쓴 정황을 확인했다고 15일 발표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날 언론 브리핑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김 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투여한 주사제 성분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보건소에서 병원 측 진술에 의존해 보고한 내용만 갖고 있어 잘 모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복지부의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16일 저녁 이동모 차움의원장은 “모든 기록 사본은 복지부에 있다”며 각종 의혹에 대해 “복지부에 확인하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 역시 뒤늦게 기록 사본을 받은 점을 인정했다.

 복지부가 확보한 기록에는 김 원장이 대리 처방한 진료기록부, 처방전 등이 포함돼 있다. ‘청’ ‘안가’ 등 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용어는 물론이고 구체적인 주사제 성분명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의혹 관련 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 “확인할 수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또 복지부는 언론 브리핑 전 조사 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했으면서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거짓 해명을 했다. 17일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복지부 관계자는 “담당 부서에 문의해 보니 브리핑 전 국회,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 마약류 폐기 기록은 조사도 하지 않은 식약처

 이 병원들의 마약류관리법 위반 여부에 대한 식약처의 조사도 맹탕이었다. 식약처는 이 병원들에서 마약류를 폐기한 기록은 아예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병원의 마약류 관리대장에 있는 구입량과 사용량, 실제 재고량만 확인한 뒤 “조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현행법상 의료기관은 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구입하고 사용한 뒤 폐기할 때까지 정확한 시점과 양 등을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특히 사용하고 남은 마약류는 관할 보건소 직원이 보는 앞에서 법에 정해진 방법으로만 폐기하고 그 증거를 사진 등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장부상으로 폐기한 것처럼 꾸민 뒤 약품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마약류를 폐기한 기록이 없거나 폐기량이 구입량에 비해 현저히 적다면 약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다”며 “식약처가 이를 조사하지 않은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최 씨 일가 이용 다른 병원도 조사해야

  ‘최순실 게이트’가 의료계로 번진 건 8일. 이 병원들에 대한 조사는 사흘 뒤인 11일 시작됐다. 그러면서 복지부와 식약처는 강남구 보건소에만 조사를 맡긴 뒤 현장에 동행하지 않았다. 더구나 복지부가 언론 브리핑 전날 담당 과장을 승진 발령을 내기도 했다. 의료계에서 “조사 시기가 늦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선 중요한 기록을 조작하거나 폐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며 “정부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 씨 자매가 자주 다닌 다른 병원들도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 씨는 평상시에는 차움의원을 이용했지만 수술 등 큰 진료는 순천향대병원을 이용했다. 이곳은 최 씨 딸 정유라 씨(20), 정 씨 아들과 최 씨 언니 최순득 씨(64)까지 최 씨 일가가 20년 넘게 이용한 병원이다.

 녹십자 아이메드 역시 이번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김 원장이 2014년 2월 차움의원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만큼 그 후 최 씨 자매나 박 대통령을 진료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해 3월부터 차움의원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병원 측은 “김 전 실장은 줄기세포 치료를 받지 않았다. 명백한 오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이 차움의원에서 진료를 받아온 고객인지에 대해서는 “환자 정보는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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